백승희<수필가>

 늘 다니던 외곽 순환도로의 길이 자주 흐릿하다. 곡선 길 위로 허리가 꺾여진 가로등은 빛을 분사하지 못한다. 반대편 불빛이 사라질 때, 상향등을 켜보아도 암막 커튼을 걷지 않는다.

 비 오는 날의 운전은 힘들다. 시야가 흐리다. 갓길에 차를 세운다. 와이퍼의 작동에도 세찬 비를 피하기는 힘들고 수막현상에 어려움을 겪는다. 속수무책이다. 세상이 투우장 같다는 생각이 빗소리에 섞인다.

 스페인의 투우 장면, 붉은 천을 들고 기수가 소를 흥분시켜 창으로 찌르고 있다. 잠시라도 소가 쉴 수 있는 퀘렌시아를 떠올린다. 하지만 결국 소가 피를 흘리고서야 경기는 끝이 난다.

 사는 일에서 비롯된 것일까. 안개가 자욱한 계절을 오가며 자막을 잘 읽을 수 없게 되었다. 영화관으로 그림자가 하나둘 스며든다. 시간을 박음질하는 소리를 내며 영사기가 화면을 끌어낸다. 구석을 찾아 영상을 좇으며 조리개를 연다. 동공은 열렸고 꽉 찬 어둠이 들어찬 눈은 영사기가 돌지 않는 렌즈처럼 백내장이 끼었다.

 영사기의 오래된 필름에서는 시간이 긁힌 횟수만큼 비가 내렸다. 영화관을 찾았을 때 알았다. 오래 사용한 횟수만큼 스크래치로 인해 화면이 흐려 보인다는 것을. 그처럼 소리 없이 어둠이 찾아왔다.

 세상은 이른 아침부터 각축전이 벌어진다. 밥을 벌기 위해 질주한다. 새벽으로 시작한 일과는 늦게야 끝이 난다. 모퉁이를 돌아 숨을 트는 곳, 잠시 투우장에서 싸우던 소처럼 퀘렌시아를 찾는다. 일중독은 독으로부터 독을 안게 되었고 마음 놓고 쉴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둠이 찾아오면 일상의 아주 사소한 것도 소중했다고 후회한다. 다시 파란 바다와 마주할 수 있기를, 피가 맺히도록 간절하게 무릎을 꿇는다. 그러나 과감하게 병증을 잘라낼 메스가 필요할 뿐.

 인공수정체로 동굴 속 어둠을 걷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다. 터널과 터널을 연결한 구간을 빠져나가면 빛이 맞아줄 것이다. 환한 길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과감하게 절개창을 열고 희뿌옇던 과거를 모조리 뽑아낸다. 새 인공수정체의 렌즈를 삽입하자, 보이지 않던 고통에서 보이는 기쁨으로 새로운 삶의 셔터가 열린다. 가로등의 먼지가 닦여졌는지 외곽의 길도 밝아졌다. 이제 두 손을 핸들에 올려놓고 속도를 낸다. 비가 멈췄다. 빛을 모으려고 동굴 속을 더듬지 않아도 된다.

 퀘렌시아는 마음의 눈으로 찾아야지. 길 없던 길에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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