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동<수필가

 수원역에서 안산을 거처 인천 송도까지 달리는 협궤열차가 있었다. 2칸짜리 협궤열차의 선로 폭은 1m쯤 되었을까. 멀어져가는 열차를 뒤에서 보노라면 마치 모이를 향해 뒤뚱뒤뚱 달려가는 오리의 뒤태를 보는듯하다. 한번은 라디오에서 사고 소식이 들려왔다. 열차가 안산으로 오는 도중, 건널목에서 시내버스와 충돌했다는 것. 충격으로 인하여 열차는 넘어지고 버스는 오뚜기처럼 건재했다고 한다.
 낭만의 협궤열차가 운행을 정지할 무렵 그 궤적을 따라 전철이 놓였다. 시야에 가리는 것 없이 동서로 관통하여 달리는 열차는 높이 솟아오른 교각 위를 달렸다. 멀리서 보면 마치 공중에 떠서 달리는 것처럼 보였고, 이를 볼 때마다 만화영화 은하철도999가 연상되었다. 철길의 남쪽은 광활한 고잔벌. 벌 한가운데에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주말엔 그곳에서 자주 낚시를 즐겼다. 아지랑이 너울너울 피어오르는 봄, 열차가 허공을 가르며 지나갈 때면 낚싯대 끝의 찌를 바라보던 시선은 어느새 붉은 노을 속으로 사라져가는 열차를 따라간다.
 사리포구는 내가 본 바닷가 풍경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바닷길과 연결된 서쪽 통로를 제외하고 나머지 3면은 모두 산언덕으로 둘러싸여 있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어항. 항구 쪽으로는 비탈진 언덕길을 따라 계단식으로 길게 수산물시장과 식당이 늘어서 있다. 그렇게 둘러싼 둔덕을 병풍 삼아 한 가운데에 고기잡이배들이 정박해 그물을 손질하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세파에 부대낀 수십 년 세월, 한 눈판 사이에 사리포구는 지도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위에 직사각형의 거대한 괴물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수십 개의 눈을 반짝이며 내려다보고 있다. 포구는 어디쯤 있었을까.
 안산에 정착한 지 어느덧 40년. 안 산다 안 산다 하면서 기어코 눌러살고 있는 이유는 이곳이 제2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건물에서 눈 덮인 고잔벌을 바라보며 미래를 꿈꾸던 늦깎이 대학생이 있었다. 그는 허허벌판이 거대 도시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격세지감을 글로 표현하기엔 벅찬 세월이 흘렀다. 그나마 아직 망막 저편에 남아있는 추억의 흔적을 소환해 낼 수 있음은 다행스런 일이다. 세상이 온통 회색빛 스크린으로 덥히는 날이면 하늘 저편에 투사되는 흑백필름의 잔상에 빨려 들어간다. 뒤뚱거리며 달려가는 협궤열차의 뒷모습, 그림처럼 아름다운 사리포구의 풍경, 고잔벌 연못과 은하철도999의 잔상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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