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하나.
이번 김해공항 인근에서 발생한 중국 민항기 추락당시 자신이 「부상 승객」의 처지임에도 20여명의 생명을 헌신적으로 구한 설익수씨(26)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최신호에서 「아시아 20대 영웅」으로 뽑아 발표했다.
타임은 특집호에서 설씨를 「평범하면서도 영웅적인 삶을 산 20명」 중 14번째로 소개했다. 사고 당시 부상으로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정신을 잃기 전까지 가급적 많은 사람을 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설씨의 말을 소개한 뒤 『남을 구하기 위해 인간의 가장 강렬한 본능인 「자기 보호」본능을 거부하는 것은 초인간적인 의지가 요구되는 것』이라고 극찬으로 논평했다.
여행사 수습직원으로 관광객을 따라 나섰던 설씨는 타임과의 회견에서 『부모님이 어릴때부터 사람들과의 신의를 중시하고 모든 사람들의 삶이 소중한 것임을 수시로 일깨워 주셨다』고 말해 극한상황에서의 영웅적인 행동이 소년시절부터 체득된 가정교육의 소산이었음을 암시했다고 덧붙이고 있다. 더 없이 중후하다. 타임이 이렇듯 대서특필 할 때 우리의 언론이나 당국은 어디서 무엇을 줍느라고 헤매고 있었을까가 심히 궁금해진다.
6.25 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의 하나였던 백마고지 전투에서 그야말로 초인적인 군인정신으로 피의 전공을 세운 김만술 소위(전투 당시 상사)에게 미국은 계급에 구애없이 최고 훈장인 십자훈장을 수여하고 서울운동장에서 UN軍을 사열하는 영광을 아끼지 않는 것을 보고서야 우리나라도 뒤늦게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던 기억이 문득 새로워진다. 안전지대에서 격이 높은 훈장을 탄 위인들도 함께 떠오르고… 남의 칭찬에 인색한 가슴에 어찌 축복이 깃드리오.
◇그 둘.
『40년 묵은 죄책감을 털어내니 더없이 홀가분합니다』
고희를 넘긴 장일감(71)씨는 40여년 전에 진 채무를 갚게 되자 비로소 한시름 놓았다. 그의 「빚진 인생」이 시작된 것은 1960년의 일. 당시 서울 중구 주교동 방산시장에서 미군물품 장사를 하던 장씨는 물건이 달리자 이웃한 정기순(女 死亡)씨에게 당시로서는 큰 돈인 23만원치의 물품을 빌렸다.
그러나 그 직후 정씨가 졸지에 숨을 거두면서 빚을 갚을 일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급기야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될 때까지 마음의 짐이돼 그를 괴롭혔다. 장씨는 죽기전에 이 짐을 덜어야겠다는 생각으로 「60년」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정씨의 아들 김석근(55)씨를 찾아 백방을 누비다가 장씨의 사연을 접한 경찰의 도움으로 김씨를 만나게 됐고 갚아야 할 물품 대금 23만원을 현재 화폐가치로 환산해서 500만원을 전달했다.
김씨는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이런 분도 있나 싶어 놀라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보통인은 개인 빚에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나라와 국민에게 빚을 지고 있는 위인들은 어떤 심정일꼬. 다만 구린데 오래 있으면 누구나 구린내를 모르게 되더라니… 그게 문제로다.
◇그 셋.
인도의 성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마하트마 간디가 막 출발하려는 기차에 급히 올라탔다. 그 순간 그의 신발 한 짝이 플랫폼 바닥에 떨어졌다. 기차가 이미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간디는 그 신발을 주울 수가 없었다. 그러자 간디는 얼른 나머지 신발 한 짝을 벗어 그 옆에 떨어뜨렸다. 동행하던 사람들이 놀라서 묻자 간디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신발 한 짝을 주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신발 한 켤레를 제대로 갖게 되지 않았습니까?』 나머지를 마저 내어주는 간디의 마음 씀씀이가 자연스러워 무진 부럽다. 목이 메인다.
◇그 넷.
「10代 시절 아버지와 함께 서커스를 구경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마침 우리 앞에는 8명의 자녀를 거느린 부부가 줄을 서 있었다. 흥분한 목소리의 대화로 미루어 그들은 결코 부자가 아니며 서커스 구경도 처음임을 알 수 있었다. 아내는 남편의 손을 잡고 자랑스럽게 그를 쳐다보았으며 남편도 흐뭇한 미소로 아내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차례가 되어 매표소에 입장료를 물어보던 남자는 순간 절망적인 얼굴로 바뀌면서 입술을 가늘게 떨었다. 충분한 돈을 갖고 있지 않는 게 분명했다. 이때였다. 나의 아버지가 말없이 20달러 지폐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런 다음 아버지는 그것을 다시 주워 들고 남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여보 당신 호주머니에서 이것이 떨어졌소』 남자는 무슨 영문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그리고 20달러 지폐를 꼭 움켜 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소. 이건 나와 내 가족에게 정말로 큰 선물이 될 것이오』 남자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들은 곧 표를 사가지고 서커스장 안으로 들어갔으며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서커스 구경을 못했지만 마음은 결코 허전하지 않았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중에서)
무엇이 보다 큰 가치인지 사리분별이 분명하고 남의 아픔을 헤아리는 이런 따뜻한 마음들이 우리 사회에 가득하다면 나라를 온통 시궁창으로 몰아넣는 이 숨막히는 상황들이 연출될리 만무하지 않을까요?
「내 탓」을 모르면 「백년하청」일 수 밖에요. 그러니 누구나 조금씩은 금이 간 영혼들도 보듬자구요. 우리가 희망하는 이상향은 「털어도 먼지 안나는 깨끗한 사회」의 실현이 아니던가요? 그러려면 앞에 열거한 이야기들에 담긴 요소들을 뜨겁게 받아들여 저마다 감동의 자체생산에 힘써야겠지요.
삶이 절망이어도 지켜야 할 우리 영혼의 순수를 위해 손을 맞잡고 머리 숙여 간구하자구요. 내 안에 나와 내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처럼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항상 함께 하기를!
-이기진 안산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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