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중 꿈의교회 담임목사

민주주의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민주주의 국가들은 몇 가지 단계를 거치며 성장합니다. 각 나라의 환경과 문화에 따라 세부적인 차이는 생기지만, 큰 틀에서는 동일한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민주화의 첫 번째 단계는 ‘의식화’ 단계입니다. 국민들이 ‘자유’, ‘평등’, ‘인권’ 등의 개념에 대하여 배우고 깨닫는 단계입니다. 기존의 봉건적, 독재적 환경을 운명 또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던 국민들이 자유와 평등에 대하여 갈망하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표출화’ 단계입니다. 국민들에 대한 ‘의식화’가 급속히 확대되면서, 자유와 평등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다양한 형태로 폭발하게 됩니다. 국민적 요구가 표출되는 방법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혁명, 시위, 내전 등의 형태로 달라집니다. 대표적인 예로, 최근 급속한 민주화가 진행되는 중동지역에서는 내전이라는 형태가 민주화 욕구의 주된 ‘표출방법’이 되었습니다.

사실 이 표출화 단계는 민주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단계입니다. 이 표출화 단계가 어떤 형태로, 얼마나 오랫동안 진행되었느냐에 따라, 각 지역에 고유한 형태의 민주주의 문화가 생겨납니다.

어떤 곳에서는 너무 격한 내전이, 너무 오랫동안 진행된 나머지 수많은 군벌들이 일어나고,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는커녕, 더욱 강력한 군사정권이 들어서거나 온 나라가 폐허가 되고 맙니다. 이 단계를 슬기롭게 넘어가지 못하는 국가는 정치,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고 회복불능 상태로 주저앉게 됩니다.

세 번째 단계는 ‘조율’ 단계입니다. 그동안 급속하게 진행되어 온 민주화 운동이 ‘숨고르기’를 하는 단계입니다. 왜냐하면, 이 단계의 초기에는‘민주 시대’에 들어선 국민들이 ‘자유와 평등’에 대하여 혼란스러운 개념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사는 법을 모르고 충돌을 일으킵니다.

타인의 자유와 권리는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데에만 혈안이 됩니다. 결국 조율의 초기 단계에서는 사회가 이전보다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들은 ‘이건 아니구나’하고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가 공존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자유와 권리’뿐만 아니라 ‘존중과 양보’라는 개념도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감정을 자제하기 시작하고, ‘협상’이라는 것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네 번째 단계는 ‘성숙’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 들어서면, 국민들은 ‘대화하는 법’을 체득하게 됩니다. 물리적 ‘힘’보다는 ‘대화와 설득’이 사회구성원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핵심적인 방법으로 자리잡게 되고, 이 원칙을 위반하는 사람은 스스로 도태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합의가 굳건히 서게 됩니다.

제가 오늘 왜 뜬금없이 민주주의 역사를 장황하게 설명하는가 하면,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을 조명하기 위해서 입니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서구국가들의 수백 년 된 민주주의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앞선 국가들의 시행착오를 비켜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3단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권을 비롯하여, 수많은 개인과 단체들이 아직도 물리적인 힘에 의존하는 대화를 추구하는 인상입니다.

물론 이런 현상들이 벌어지는 이유에는 그만큼 걸린 이슈들이 중요하다는 점도 있겠지만, 강자든 약자든 아직도 ‘빠르고 쉬운 길’만을 선호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정부가 필요 이상으로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최근 카드수수료 인하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소규모 개인자영업자들이 카드수수료를 인하할 것을 요구하며 단체행동에 나서자, 카드사들이 양보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학원, 더 나아가 룸살롱들까지 카드수수료를 낮추라며 단체행동에 나섰습니다. 물론 사업하는 분들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지출을 줄이고 싶겠지만, 이런 기조가 또 다른 ‘떼쓰기’ 문화로 변질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게 됩니다.

제가 지금 카드사들 편을 드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와 주무부처들은 카드사들이 자신들의 독점적인 입지를 이용하여 ‘불공정 담합’이나 내부적인 비리 등의 불법을 저지르지 않도록 철저하게 감독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에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신에 이익에 부합되지 않으면, 무조건 떼쓰고, 점거하고, 드러눕는 행태 역시 이제는 멈추어야 합니다.

‘대화’가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 원합니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다름이 ‘분열과 고통의 원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건실하게 성장하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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