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 동화작가 (안산화랑초등학교 교장)

흔히 잔치가 끝나면 예서제서 터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진한 감동이 남는 법, 그러나 찝찝하기 그지없다. 여느 총선 때도 그랬지만 가슴에 들어오는 게 별로 없다.

서로 물고 뜯고 도저히 대한민국의 출구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선거는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국민의 고귀한 권리이다. 국민의 투표로써 나라를 위해 헌신할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 그런 면에서 볼 때 이보다 더 좋은 잔치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막상 지금까지의 일부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가슴 답답하기 그지없다. 국회의원(國會議員)이 아니라 국해의원(國害議員)을 뽑는 선거란 비아냥에 가슴이 섬뜩해진다.

막말 파문, 성희롱 추문, 논문 표절 추문 등 선거 기간 동안 차라리 눈과 귀를 감고 막는 게 편할 정도였다. 이번 19대 총선은 야권의 강한 여론몰이와 SNS 등을 통한 각계각층의 투표 독려가 이어지면서 꽤 높은 투표율이 예상됐었다. 그러나 투표율은 기대보다 훨씬 못 미치는 54.3%에 불과했다.

안철수 등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투표율 70% 목표와 이색 퍼포먼스를 공약하며 투표참여를 독려했지만, 정치에 무관심한 유권자들을 투표소로 이끌어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이 역부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치인들은 수백 번 반성해야 할 것이다. 사실상 이번 총선은 12월에 있을 대선 전초전의 성격이 강했다. 전초전에서는 여당이 승리하고, 패배한 야당 대표는 대표직을 물러나고 말았다.

그래도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에게 큰 희망을 준 후보들이 있었다. 기득권과 자기 표밭을 버리고 적지에 뛰어들었던 후보들, 광주 서구을에 출마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와 대구 수성갑에 출마한 민주통합당 김부겸 후보가 그들이다.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40% 안팎의 높은 득표율을 올려 국민들에게 희망을 선사했다. 우리나라 지역주의의 벽은 철옹성과 같다. 가히 세계적이다. 지역주의의 벽을 깨겠다는 생각은 어찌 보면 계란으로 바위를 깨겠단 무모한 생각과 다름이 없다. 무모한 승부전에 뛰어들었던 그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지역주의의 높은 벽이 허물어지는 날이 바로 선거 잔치이다. 이제 그 징검돌을 놓은 셈이나 다름없다.

우리나라 지역주의의 벽처럼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베를린 장벽도 오래 전에 무너졌다. 베를린 봉쇄 13년 뒤, 동독 정부는 서독행 탈출을 막기 위해 동·서 베를린 사이에 장벽을 축조했다.

약 45.1㎞에 걸친 콘크리트 벽으로 오랜 기간 냉전의 상징물로 인식되어 온 베를린 장벽은 동유럽의 민주화로 1989년 11월 9일에 철거되었다. 독일의 장벽이 무너진 지도 벌써 20여년이 훌쩍 넘었다. 우리의 뿌리 깊은 지역주의 정서도 곧 허물어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올 대선 때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조급함일까?

이제 우리는 총선 잔치의 후유증을 하루속히 최소화하여야 한다.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검찰의 칼끝이 선거사범들에게 향하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19대 총선 지역구 당선자 중 79명(11일 기준)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으며, 이 중 6명을 제외한 73명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검찰은 선거사범 수사를 신속하고도 엄정하게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검찰 조사의 귀추가 주목된다.

새로 당선된 국회의원들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국회의원이 되면 헌법상 보장하는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제외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 누리는 혜택이 무려 200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이런 특혜도 자진 반납했으면 한다. 적어도 국해의원(國害議員)이란 소린 듣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언제 등을 돌렸느냐는 듯 낄낄거리며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소아적인 생각은 버려야 한다.

벌써부터 각 당은 대선 준비 체제로 돌입하고 있다. 대선으로 가는 길목, 또 얼마나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줄지 한숨부터 나온다. 올 12월에 치러질 대선을 앞두고 8개월간 양당은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이다.

야당은 총선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공세의 고삐를 여느 때보다 더욱 더 강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많은 충돌이 잦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제주 해군기지 건설, 재벌개혁 등의 민감한 이슈가 강력하게 충돌할 것으로 예측된다.

국민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표부터 따고 보자는 당리당략에 치우친 그런 사고방식은 미련없이 내던져야 한다. 그래야만 온 국민들이 잔치를 벌이는 기분으로 선거에 임할 것이다.

류근원 동화작가 (안산화랑초등학교 교장)  kwroo@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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