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 동화작가 (안산화랑초등학교 교장)

텔레비전이 보여주는 장면 장면이 ‘저게 정말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인가?’ 오랜 시간 동안 도저히 믿겨지질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영화 속에서나 보았던 화학전이 끝난 뒤의 전쟁터 같은 모습에 소름이 확확 돋았다.

지난 9월 27일, 한 회사에서 불산 가스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마을 뒷산의 소나무와 참나무 숲이 누렇게 변해 화학전을 치룬 것 같은 모습을 하고, 벼와 배추 등 가을걷이를 앞둔 식물들의 잎이 죄다 누렇게 말라 주저앉아버렸다.

비닐하우스 안의 과실나무도 모조리 말라 죽었다. 사고 현장에서 200m 떨어진 축사의 소들도 콧물을 질질 흘리고, 기침을 하며 코에서는 피까지 흘러나왔다. 대한민국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에서 일어난 일이다.

정부는 지난 8일에서야 비로소 불산 가스 누출사고 현장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기로 결정했다. 사고가 난지 열흘이 지나서야 이루어진 결정이다.

차일피일 미룬 결정이 얼마나 큰 후유증을 불러올 것인가 정부는 반성해야 할 것이다. 주민들은 늦었지만 큰 시름을 덜어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그러나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은 격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벌써 10월이다.

예년 같으면 그래도 수확의 기쁨에 미소를 지을 주민들이다. 그러나 봉산리 주민들은 불산 가스 때문에 누렇게 말라 주저앉은 논밭을 보며 한숨을 짓고만 있다.

연말 이전에 비료와 가축 사료 비용 등 영농자금을 갚아야 한다. 빠르면 다음달, 늦어도 연말 이전에는 보상이 이루어 져야 한다. 보상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주민들의 연체 비용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정부는 서둘러야 할 것이다.

불산 가스의 후유증은 동식물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당국은 불산 가스 유출 사고가 나자,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그러나 12시간 후 이상이 없을 것으로 판단, 귀가시켰다.

주민들은 연이어 고통을 호소하고 결국 주민들이 집단 검진을 받고 다시 대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정부가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판단했다가 오히려 화를 키운 꼴이다.

봉산리 주민 외에 인근 임천리 주민 190여명도 해평면 청소년수련원으로 긴급 대피하는 등 인근 지역으로 2차 피해가 확산되는 가운데 3차 피해에 대한 우려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3차 피해도 무섭기 그지없다. 해당 지역은 물론 인근 지역, 그리고 불산이 땅과 지하수를 오염시키거나 식수원인 낙동강을 오염시킬 경우 그 피해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지난 해 1월, 전국을 휩쓴 구제역 대재앙의 상처가 아직도 기억에 무섭게 남아있는 우리들이다.

불산은 불화수소산을 줄여 부르는 말이다. 불산은 금속의 녹물 제거나 반도체, 유리 가공 등에 사용되는 무색의 강한 산성의 독성물질이다. 물에 잘 녹고, 끓는점이 19.5도로 매우 낮아 기체 상태로 공중에 떠다닌다.

일반적인 산보다 빠른 속도로 피부나 점막에 침투하고, 인체에 유입되면 신경계를 교란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무서운 가스이다. 특히 불산의 불소이온은 잘 분해되지 않아 토양, 식물에 잔존할 경우 오랜 시간 동안 동식물 및 인간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현재 봉산리 주민들은 마을에서 10㎞가량 떨어진 백현리 구미시환경자원화시설에서 피난 아닌 피난 생활을 하고 있다. 자녀들을 멀리 친척집 등으로 보낸 집들도 많다.

건강 이상 증세로 진료를 받은 주민이 3100명을 넘어섰다. 소, 돼지 등 가축 피해도 3209마리에 달했다.

77개 업체가 영업 손실과 생산품·설비의 부식 등에 따라 신고한 피해 금액만도 177억1000만원에 이른다. 농작물 피해도 갈수록 늘어나 212㏊로 집계됐다. 피해액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사고 발생 10일 만에야 현장을 찾은 환경부 장관의 모습도 마음에 들어오질 않는다. 진즉 찾았어야 했다. 영향력 있는 대선주자들도 현장을 방문했거나 방문할 예정이다. 입에 발린, 사탕 발린 소리를 할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피해자들의 아픔을 나누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삶터인 안산에도 반월산업단지와 이웃 도시에 시화산업단지가 자리 잡고 있다. 수많은 업체들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하여 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산업단지에도 유독가스를 사용하는 업체들이 많다.

이번 구미시 불산 가스 사고를 안산시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철저한 재난 방지 시스템 구축으로 다시는 구미시와 같은 아픔을 겪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경북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의 아픔이 조속한 시일 내에 치유되길 두 손 모아 빈다.

류근원 동화작가 (안산화랑초등학교 교장)  kwroo54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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