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동화작가 (안산덕성초등학교 교장) |
1948년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총선거를 통해 국민의 대표로 선발된 198명의 제헌국회 의원들이 제정한 헌법을 공포한 날이다.
초등학교 시절, 사회 시험지에 헌법 제1조를 정확하게 외어 적은 기억이 새롭게 다가온다. 그러나 제헌절 노래는 첫 소절 부분만 가물가물 떠오를 뿐이다. ‘비 구름 바람 거느리고 인간을 도우셨다는 우리 옛적…’ 부끄럽기 그지없다. 명색이 교육자가 이 모양인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나만의 기우였으면 좋겠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게 국경일의 모습이다. 제헌절은 2008년 법정공휴일에서 제외된 이후, 그 관심도가 다른 국경일에 비해 급추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제헌절 노래를 학생들에게 매년 들려는 주었는지, 계기교육은 제대로 시켰는지…. 우리 스스로가 제헌절을 이방인처럼 만들고 있는 것 같아 이래저래 개운치 않다.
사회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도록 하는 것에는 관습, 도덕, 규칙, 조례, 법률, 헌법 등이 있다. 그 중 국가를 유지하는 근간은 헌법에 있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국가의 조직과 국가를 다스리는 원리를 정해 놓은 법으로 최상위 법이다.
국가가 존립·발전하기 위해서는 법치의 실현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법과 질서 준수 실태는 어떨까? 한 마디로 ‘아니올시다’이다.
몇 년 전 한국개발원은 우리나라 ‘법질서 정비 및 준수’ 정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27위에 머무르고 있다고 발표했다.
올해 법의 날을 맞아 법률소비자연맹은 전국 고교생 3485명을 상대로 법의식을 대면 조사한 결과 충격적인 통계자료를 제시했다. 응답자중 94.43%는‘권력이나 재력이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 ‘법보다 권력이나 돈의 위력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도 87.43%에 달해 법질서에 대한 고교생의 불신이 심각한 수준으로 드러났다.
절반에 가까운 44.53%의 학생들이 ‘성공을 위해 어느 정도 법을 어길 수밖에 없다’고 응답한 부문에는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이다. 더욱이 헌법을 만든 제헌절을 아는 고등학생은 10명 중 6명 뿐(60.46%)으로 나타났다.
이 나라의 미래를 책임 질 학생들의 법 수준이 이 정도면 그 대처방안이 절박할 정도로 시급하다.
이게 어디 학생들의 탓으로만 돌릴 것인가. 가장 법을 안 지키는 집단으로는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78.51%)을 꼽았을 정도이니 학생들을 탓할 일도 아니다.
우리 국민의 낮은 법질서 의식은 정부의 책임이 제일 크다. 헌법 위에 막무가내 식 떼법이 용인되는 사회 풍조가 만연된 시절도 있었다. 오죽하면 헌법 제1조 1항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떼법공화국’으로 바꿔 정부를 비아냥거렸을까.
법을 지키면 오히려 손해, 불법 행위를 하다 적발되면 부끄럽기는커녕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는 국민이 많다.
낯부끄러울 정도의 기초 질서가 지켜지지 않는 곳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이 널브러져 있다.
이번 제헌절이 우리 국민의 의식전환이 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아니 국민보다는 법의 산실인 국회부터 반성해야 한다.
지금까지 상식 이하의 갖은 꼴불견 추태로 우리 국민들을 실망시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닌 곳이 국회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월 25일 제50회 법의 날 기념식에서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원칙 아래 공정하고 엄정한 법집행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와 같은 부끄러운 말이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상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한 장면이 제헌절을 맞아 다시 새롭게 떠오른다.
법을 만드는 입법부, 집행하는 행정부,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법부의 공직자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국민 모두에게 헌법 제1조 2항처럼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수긍할 수 있도록 죽을 각오로 환골탈태를 해야 한다.
이방인 같은 모습으로 제헌절이 우리 주위에 서성거리고나 있지 않은지 제헌절을 맞아 우리 모두 차분하게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류근원동화작가 (안산덕성초등학교 교장) kwroo54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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