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의 속성이야 변함이 없을테지만 그래도 시적 언어로 정치적인 매듭을 풀어가던 옛 우리 선인들의 모습이 때로는 기막히게 멋스러워 보이면서 오늘날 정치인들과 비교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우리 모두 옛 시조 두어편을 감상해 보며 비정하고 잔혹한 칼부림을 시적 언어로 풀어가던 옛 우리 선인들의 여유와 멋을 발견해 보시면 어떨까요?
고려말의 대학자 정몽주는 공민왕 9년에 22세의 젊은 나이로 연3회에 걸쳐 장원급제를 하고 벼슬이 문하시중, 우문관 대제학에 이르기도 했으며 성리학의 대가로 ‘동방이학의 조종’이란 청호까지 듣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왕조를 창건한 이성계 장군과는 무척 가까운 사이여서 여진족을 토벌하는데 함께 종군하기도 했고, 명나라와 일본 등에 건너가 뛰어난 외교력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성계의 야망을 눈치챘고 그를 제거하려다 이성계의 첫째 아들인 이방원(훗날 조선왕조 3대 태종)의 재빠른 술수에 말려들어 실패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방원의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왕조 건설 작전에 정몽주만 동참해 주면 망국의 한에 겨워 갈 길을 몰라하는 고려 유민들의 민심을 수습하는데 결정적인 힘이 될 것만 같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민중들은 자기들 마음속에 우상을 모셔 두고 그 우상의 뒤를 따르려는 안이한 처세관을 갖기 마련인지라 만약에 정몽주만 조선왕조의 개국에 동참하고 새로운 왕조창업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나선다면 고려의 수많은 후예들은 두말 않고 이성계가 앞장서 있는 조선왕조를 향해 충성을 바칠 게 뻔한 이치였습니다.
이성계 측에서는 왕위 자리 아니고선 그 어떤 자리라도 정몽주 당신에게 다 내어줄테니 제발 좀 도와달라고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처지 였습니다. 정몽주도 말하자면 일개 왕조의 권력 핵심부에 앉아 있던 사람이 대세의 흐름을 읽지 못할 리 없었으며, 뜬구름보다 무상한게 인심의 소재란 걸 모를 리 또한 없었습니다.
정몽주는 이성계의 욕망과 야욕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이성계의 초청에 응해 떳떳하게 정몽주 자신의 뜻을 밝히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이튿날 정몽주는 태연한 모습으로 이방원의 집을 찾아갔고 이방원은 예의를 갖춰서 정몽주란 거목과 대좌, 술을 마시기 시작 했습니다.
한번두번 술잔들은 오갔고 좌중은 자연 취흥으로 들떠갔습니다. 이방원은 깍듯이 예의를 갖추며 정몽주에게 “대감님 소생이 대감을 위해 권주가 한수 읊어도 되겠습니까” 정몽주는 부르라고 하니 이방원의 입에서는 저 유명한 ‘하여가(何如歌)’가 흘러나옵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료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방원의 노래를 들으면서 정몽주는 이방원이 자신의 마지막 결심을 엿보고자 한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하하하…좋은 노래였네, 나도 화답을 해야겠구료”하고 저 유명한 ‘단심가(丹心歌)’를 읊조렸습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퇴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이윽고 두 사람의 갈 길은 분명해졌습니다. 이방원은 정몽주를 제거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된 것이었고 정몽주 또한 내 손으로 너희 역적모의를 뿌리 뽑지 못했으니 내가 가야할 길은 바로 북망산이란 것으로 작정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그날 밤에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이방원이 매복시켰던 자객들의 손에 의해 격살을 당했습니다.
지금 우리 곁에는 이렇듯 시 한 수에, 아니 철학에 생명을 건 정치인들이 없는것 같아 세상이 온통 시끄럽고 번잡스럽기만 한 건 아닌지…
/한성디지털대학 연극영화과 교수
박규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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