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결과는 놀랍게도 노동당 정권을 반대하는 불신임안에 찬성하는 표가 311표, 반대하는 표가 310표…, 단 한표의 차이로 정권이 교체될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종래의 표결에서는 군소 정당인 자유당과 스코트랜드 민족주의당 표가 늘 집권당인 노동당을 도왔지만, 당시 높아 가는 실업률을 막지 못하고 끝없이 계속되는 노동자들의 파업도 막지 못하는 노동당은 누가 봐도 무능력한 정권이었다.
더 이상 노동당은 집권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자유당의 13표와 스코트랜드 민족주의 당의 11표가 보수당에 가세하여 결국 불신임안에 대한 찬성표가 311표, 반대표가 310표, 그런 절대절명의 순간을 만든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일이 잘 안 되느냐고, 한표가 아쉬운 노동당에서 알프레드 부르턴이라는 의원 하나가 갑작스런 몸살에 걸려 병원에 입원중이었다.
그 부르턴 의원이 입술이 부르트던, 발바닥이 부르트던간에 구급차를 타고서라도 의회에 나왔더라면 문제는 또 달라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동수가 됐을때만 의장이 직접 나서서 집권 여당쪽을 도와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기때문이다. 그러나 밤10시 19분 개표가 막 끝났을때 분명히 표는 집권 여당인 노동당이 310표였고, 야당인 보수당과 군소 정당들의 연합표가 311표였다.
염연히 한 표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의장이 집권 여당을 도와서 동수를 만들어 버릴수는 없었던 것이다. 아마 정치가 미숙했던 과거 우리의 국회에서였다면 의장이 시간을 끌면서 뭔가 계산이 잘못되었다고 우물쭈물 하면 갑자기 국회의사당의 불이 꺼지고, 여당 의원들의 보좌관들이라도 튀어 나와 적당히 소란을 벌인 뒤, 다시 불이 들어왔을때는 집권여당의 표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의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날쌔게 의사봉을 꺼내 두들기면서 다음과 같이 외쳤을 것이다.
“에, 개표과정이 다소 거칠기는 했습니다만은 여당이 근소한 차이로 승리 했음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땅땅땅!”
그리고 의장은 양심에 철가면을 쓴 채 무술 경위들의 호위를 받으며 뒷문으로 살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때 영국의회에서는 집계 결과가 나오자마자 테임스 강변의 의사당 전광판에 정확하게 야당 311표, 여당 310표라는 숫자와 함께 집권당 패배라는 자막이 선명하게 나타나고 의장은 초연히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야당석에서는 서로 껴안고 감격하는가 하면, 의사당 마루를 발로 쾅쾅 구르며 껑충껑충 뛰는 의원들로 소란이 점점 커지자 그때까지 의장석에 조용히 앉아 있기만 하던 의장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이제 흥분을 가라앉으시고 수상의 소감을 들어 봅시다” 그때 국무의원석에서 묵묵히 앉아 단 한표의 차이로 자신의 내각이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 보았던 캘러언 수상이 단상에 올랐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본인과 본 노동당 내각은 지금까지 의원 여러분들의 정정당당한 정부 선택을 지켜 보았고, 우리는 패배했음을 확인했습니다. 저희들은 날이 밝는 대로 퇴진의 절차를 밟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다음날 아침해가 밝자 켈러언 수상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방문하여 노동당이 한표 차로 패배했음을 보고하고, 의회를 해산한 뒤 곧바로 총선거에 들어갈 준비를 진행시켰다.
그리고 켈러언 수상은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를 통해서 아무런 변명이나 억지도 없이 노동당이 패배했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총선거를 실시할 것을 밝혔다.
그렇게 해서 그해 5월 3일 보수당의 당수였던 대처 여사는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면서 노동 정책에 실패한 노동당을 커다란 표차로 누르고 영국 정치 사상 최초의 여성 수상이 되었으며, 유럽의 정치 사상 역시 최초로 치마를 두른 수상으로서 집권을 하게 된 것이다.
놀랍게도 잡화상 가게집 출신의 여성 수상이 20세기초 영국 아스퀴스 수상이 세운 8년간의 장기 집권 기록을 깨고 3선 연임을 하면서 당당히 9년간이나 대영제국의 정권을 이끌었다. 9년 동안 대처 수상은 아일랜드 문제를 남성 수상들보다 훨씬 강력한 방법으로 처리 하면서 실업률을 줄였고, 늙고 병든 영국 사회에 진정제와 함께 회복제를 서서히 주입시켜 갔다.
만약 그때 영국 의회가 단 한표 차이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의회의 질서를 변칙적으로 깨뜨렸다면 영국은 아직도 그 영국병을 치료하지 못한 채 20세기의 삼류국가로 전락했을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것을 길고 거창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 단 한표의 패배라도 깨끗하게 인정하고, 또 비록 수백 년 동안 남성들이 지켜온 당이나 수상자리를 치마 입은 여성이 차지한다하더라도 정치적인 순리가 그것을 요구하면 대세를 깨끗이 수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왜? 이때 이런 글을 올렸는지 ‘씩’웃으며 보실 것이라 믿는다.
/한성디지털대학 연극영화과 교수
박규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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