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기야는 대기업에 납품하는 레미콘, 주물, 유화 등의 제품을 생산하는 협력 업체들이 가격 인상을 요구하면서 납품을 중단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생산한 제품을 100만원에 납품하고 나서 후에 대금을 결제 받아 다시 원자재를 구입하려하니, 원자재 값은 130만원으로 뛰어 올라 있어 공장을 돌리면, 돌릴수록 적자가 누적 된다는 것이다.
어느 대기업에 납품업을 하던 한 협력업체의 사장은 “할 수 없이 최근에 폐업신고를 했다” 면서 울먹였다.
반면에 대기업은 그 나름대로 애로가 있다. 협력업체들이 요구하는 대로 가격을 올려주게 되면, 그 부품들로 만들어진 완제품이 국제시장에서 우리보다 비교적 원자재 파동의 피해를 덜 받는 일본이나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게 돼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원자재 파동이 생길 때면 나에게는 언제나 떠오르는 악몽이 있다. 1970년대 초, 나는 냉난방, 위생 설비공사를 주로 하는 건축 설비업계에 뛰어들었었다. 1960년대 말에 일본에서는 이미 사양 산업으로 분류돼 경제 후진국으로 생산 시설을 이양해 주려고 하던 중에 일부 주물업자들이 이 시설을 국내로 들여와 공장을 짓고 생산을 시작 했으나 건축경기가 별로 없던 시절이라 수요가 없어 판로가 어려웠기 때문에, 확실한 공사를 수주한 것이 확인되면 얼마든지 자재를 외상으로 대 주었고, 공사 진도에 따라 기성금으로 받은 3개월짜리 어음을 갖다 주어도 “고맙다”며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고 할 때였으니 자금력이 없던 나로서는 한번 해볼 만한 업종이었다.
1973년,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그 해의 공사 수주금액이 그때 돈으로 5억 원을 돌파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공사를 수주할 때 마다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자재를 지원해 주던 자재상들이 외상거래를 꺼려하더니 현금을 요구했다. 얼마 안 있어 선금을 요구하면서 날이 다르게 자재 값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1973년에 세계 경제를 뒤 흔들었던 유류파동과 고철 파동의 파고가 함께 몰아닥친 것이었다. 세계 경제의 흐름과 정보에 능통한 일본 상인들은 현금 보따리를 싸들고 와서 주물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을 씨를 말리듯 훑어가 버렸다.
이때 정부에서는 ‘증산’,‘수출’,‘건설’을 조국 근대화 작업의 3대 시책으로 삼아, ‘수출’을 정책 목표의 제1로 독려했기 때문에 내수용(內需甬) 재고도 남겨 놓지 않고 몽땅 수출 해 버렸다.
그런 결과로 건설 중이던 모든 공사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자 궁여지책으로 일본에 수출했던 주물 제품들을 역수입 해 오는 촌극까지 벌어지게 되었는데, ‘15미리 엘보우(주물배관 이음쇠)’ 1개에 25원씩 수출했던 것을 다시 수입해 와서 120원에 판매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신(神)인들 망하지 않고 버텨낼 재주가 있겠는가?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과 모든 것을 내 놓은 채 거리로 나앉게 되었으며, 그 때부터 고난속의 삶을 살아야 했다.
이번 원자재 파동은 지난 10년간의 세계적 호경기 속에서 고도성장을 계속해온 중국과 인도가 경제 성장에 필요한 원자재를 다량으로 수입하기 때문에 시작됐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과 인도는 원자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화자 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도 일본과 중국 등은 석유류를 대체할 수 있는 신에너지 개발에 노력을 거듭해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시계 각 처에 매장돼 있는 석유류를 탐사하고 당사국과 공동개발에 성공하고 있다. 또한 중남미를 비롯한 아프리카 제국들과의 우호관계를 맺으면서 원자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한다.
이런 세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아무 대책이 없이 손을 놓고 있었다. 이제, 황야에 벌거벗은 채 서 있는 처지와 같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을 수밖에 없다. 이제 총선도 끝났다. 하루빨리 이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는 여(與)도 없고 야(野)도 없다. 우리 국민들이 또 다시 나와 같은 고난의 삶을 살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 「원자재 파동! 이제 그 악몽을 다시 꾸고 싶지 않다.」
이재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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