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까지 흥행가도를 달릴 줄은 몰랐다. 나이든 소와 칠십이 넘은 노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독립영화가 이 불경기에 흥행기록을 계속 깨고 있으니 신기할 노릇이다. ‘워낭소리’가 2백만으로 달려갈 즈음 느린 걸음으로 평일 아침, 극장을 찾았다.

40대 아주머니들의 단체관람,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임, 엄마를 모시고 영화를 보러온 딸. 평소 같았으면 한산할 시간에 극장은 핸드폰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조금 흥분된 분위기였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극장 안에서 이렇게 많이 보기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영화가 끝날 즘 나도 어느 샌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등뼈가 앙상하게 드러나는 늙은 소가 결국 흙바닥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눈을 껌뻑이면서 당연하다는 듯 죽음을 맞이할 때, 산다는 게 한없이 서럽게 느껴졌던 거 같다. <워낭소리>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면, 분명 소재가 가진 힘에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잡으면 부서질 것처럼 메마른 할아버지의 육체와 40년을 묵묵히 그의 곁을 지키다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소의 형상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애의 감정이 배어 있다.

그러나 이들의 감정을 포착하는 이충렬 감독의 연출은 이상하게 그 눈물의 정체가 단순히 음악과 영상이 만들어내는 환영에 불과한건 아닐까 계속 돌아보게 만든다. 실제로 <워낭소리>는 다큐멘터리의 외양을 갖고 있지만, 보통 픽션영화와 같은 강한 극적 형식을 보여준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소의 관계를 클로즈업을 통한 반응 숏으로 이어붙이면서 마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영화 내내 어디서 들리는지 알 수 없는 워낭소리가 계속 울리고, 중경과 원경으로 잡은 화면에 다른 장소에서 따온 듯한 할머니의 대사를 삽입하는 식이다. 다른 다큐멘터리에서 가끔씩 볼 수 있는 인터뷰를 따내는 장면이나 감독의 모습이 드러나는 장면 등은 전혀 볼 수 없다. 실제로 이충렬 감독은 이 영화의 이야기 흐름을 방해하는 모든 장면들은 되도록 삭제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 시간 남짓한 이 다큐멘터리는 다른 곳으로 셀 여력도 없이 정확하게 감독이 목표로 하는 감정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만약 다큐멘터리가 현실의 정직한 기록이라고 한다면, 분명 <워낭소리>는 그것의 위반일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영상이란 것이 어떤 허구적 현실을 재구성해 관객들에게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일종의 환영이라면 그것의 더하고 덜함을 윤리적인 잣대로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란 생각도 든다. 오히려 그때 중요한 건 태도이고, 환영을 통한 영화적 재구성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냐는 것이다. 여기서 <워낭소리>가 어떤 이미지를 통해서 말하는 소박한 진정성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워낭소리>가 현실의 재료를 극적으로 치장해서 얻게 된 득만큼 분명 실도 눈에 뛴다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이 그랬다. 소가 죽고 나서, 빈방에 홀로 앉아있던 할아버지가 환청처럼 워낭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가고, 소나무가 있던 언덕에 앉아 멀뚱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장면은 솔직히 인위적으로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소가 포클레인의 도움을 받아 흙속에 무기물처럼 묻히는 장면이후에 할아버지가 몹쓸 육체의 짐을 지고 그냥 계속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더 깊은 여운이 남았을 거 같기도 하다.

이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워낭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극장에 들어선 관객들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허리도 제대로 못 펴시는 할아버지가 팔뚝보다도 얇은 다리를 이끌고 밭에서 끈질기게 일하는 모습과 등뼈가 다 보이는 늙은 소가 묵묵히 수레를 끄는 모습을 본다. 이제 닳고 닳아 언제 꺼질지 모르는 육체를 지고 두 생명체가 걸어간다. 그것은 엄살 피며 힘들게 하는 일도 아니고, 어제 그랬듯 오늘도 습관처럼 당연히 오는 일상이다. 그 장면을 보는 것만 해도, 사실 난 <워낭소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미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

소의 육체와 노인의 육체를 통해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일평생의 무상함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육체의 끈질긴 생명력이다. 이것은 아침에 일어나면 서둘러 지하철을 타고 컴퓨터 모니터 앞에 자동적으로 앉아있는 현대인들의 죽은 육체와 겹쳐 보이면서 이상한 감흥을 준다.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할아버지가 소를 팔려고 우시장에 가서 웃음거리가 될 때, 치열한 생존경쟁의 시장에서 매일 상품처럼 값이 매겨져 비루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초상이 오버랩 되면서 씁쓸해 진다. 영화 <매그놀리아>에 나오는 대사처럼 산다는 건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왜 이렇게 긴지 모르겠다. 사십년을 동고동락하며 함께 일해 온 할아버지와 소는 산다는 게 결국 무거운 육체의 껍데기를 지고 어쩔 수 없이 가야하는 길이란 걸 직감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소가 붉은 흙속에 묻히고, 남아있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슬픔이 아닌 부러움의 정서가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늙어간다는 것이 슬픈 유일한 이유는 아마 삶의 쓸쓸함을 같이 견뎌내던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홀로 버텨내야하는 상실의 시간들 때문이 아닐까.

송보림 영화평론가  freehel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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