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의 영화 <박쥐>를 극장에서 보면 재밌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도대체 여기서 웃어도 될지 어떨지 망설이는 관객들의 엉거주춤한 모습이 자주 눈에 띄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화가 끝나고 크레디트 자막이 올라가면, 이 영화 절대보지 말라고 말해줘야겠다며 서둘러 극장을 빠져나가는 사람들부터 끝까지 자리에 앉아서 음악을 듣는 사람까지 가지각색의 반응이 나온다. 어째서 똑같은 영화를 두고 이렇게 다양하고 격렬한 반응이 쏟아지는 걸까. 박찬욱의 영화에 불편해하는 사람들과 흥분하며 환호 하는 사람들과의 그 먼 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난 <박쥐>를 극장에서 두 번 보았다. 그런데 그 두 번의 관람에서 느껴진 정서가 그처럼 매우 상반 됐었다고 하면 내가 심하게 이중인격인걸까. 어쨌든 박찬욱의 영화를 두 번 볼 때 난 대부분 처음과는 다른 재미와 감정을 경험한다.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 긴장되고 뭔가 수렁에 빠진 듯 떨떠름한 기분이 두 번째 볼 때는 가볍게 해소되어 그 무섭고도 웃기는 난감한 장면들에 혼자 키득키득 거리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복수는 나의 것>을 포함한 <친절한 금자씨>이후 박찬욱의 영화는 일직선으로 가는 플롯의 형태를 벗어나, 분절되고 파편화 된 이야기 속에 상황만을 툭 던져 놓는다. 치밀한 플롯을 통해 감정을 응축하고 쌓아가 증폭시키는 것이 아니라 낯선 상황과 인물들이 만들어 내는 이상한 공기를 그려내는 것이다. 그 속에 전혀 상반된 듯 보이는 무서움과 유머를 병치시키면서 관객들은 무섭고 끔찍한 상황에서 나오는 웃기는 대사들에 도대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른 채 남겨진다.

웃음은 냉정한 거리에서 나온다. 중대한 의미를 찾아내겠다며 큰 결심을 가지고 스크린에 몰입할 때가 아니라, 일정한 거리에서 팔짱끼며 불구경하듯 관찰하다 그냥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이다. 박찬욱의 영화는 상황을 굳이 정리하지 않고, 그것이 기묘한 상태 그대로 정의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상태 그대로 놓아둔다. 그의 영화가 가진 이런 모호한 형식은 그대로 주제와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박쥐>는 어쩌다 흡혈귀가 된 신부가 주인공이다. 흡혈귀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지 않고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존재다. “여우가 닭 잡아먹는 게 죄야”라며 항변하는 영화 속 태주(김옥빈)의 대사처럼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윤리적인 의지를 지키고자 할 때, 피할 수 없는 딜레마에 처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흡혈귀와 신부라는 상반된 두 역할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상현(송강호)의 존재론적 고뇌를 정색 하며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아래 모순적인 상황을 그냥 놓아둔다.

상현은 자신이 흡혈귀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도, 별로 큰 충격을 받지 않고 그냥 거기에 적응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든 죄는 짓지 않으려고 뇌사 상태에 빠진 신자의 피와 자살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피를 얻어먹으면서 지낸다. 그 피를 마시는 모습조차 빨대나 락앤락, 냉장고를 이용해 아주 일상적인 행위로 비춰진다. 상현에게 피는 말 그대로 일용할 양식이다. 현대인들이 하루하루 생존하기 위해 돈을 벌어 오듯, 상현은 피를 구하러 다닌다. 강제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지 않고, 최소한 살아갈 수 있는 만큼의 피만 섭취하면서 존재의 정당성을 지키는 것이다. 여기서 ‘다들 편하게 잠든 거 같아’ 라든가 ‘뱀파이어라는 게 그냥 삶의 리듬이나 취향 뭐 그런 거 아닐까’라는 코믹한 대사가 나온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흡혈귀 속성에 어울리지 않는 윤리의식을 가진 상현은 현실이나 지옥 그 어디에서도 살아가기 힘든 존재다. 상현은 태주를 사랑하게 되면서 자신이 그나마 지키려던 가치들이 하나씩 무너지는 걸 보게 된다. 태주의 남편이자 자신의 친구였던 광호를 살인하게 되고, 태주가 뱀파이어가 된 후 벌이는 살육행위들을 그냥 눈감아 줄 수밖에 없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원하는 것을 가져다 줄 수도, 그렇다고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는 난감한 현실 앞에서 먹고 살 것을 책임져야하는 흡혈귀 가장은 고민한다. 자기합리화의 대가 상현도 여기서는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아무리 존재를 정당화하고 살아보려고 해도 여전히 흡혈귀는 흡혈귀다. 이미 상현이 뱀파이어가 된 순간, 근본적으로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박찬욱 영화의 주인공들은 그렇게 절망을 인정하며 생을 살아가거나 혹은 끝을 맞는다. 그러나 절망이 다다른 끝에서 감독은 알 수없는 숭고함의 바다로 관객을 데려다놓는다. 인간이 자신의 밑바닥을 바라보았을 때, 선과 악, 미와 추도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는 벼랑에 섰을 때, 역설적으로 인간의 숭고함을 발견하는 것이다.

<박쥐>는 숨 막히듯 답답한 공간인, 병원, 성당, 행복한복집을 지나, 마지막에 사막 같은 평원의 벼랑에서 멈추고, 드디어 광활한 바다를 만난다. 자동차 한 대를 가지고 이상한 실랑이를 벌이던 두 남녀는 새벽녘 어스름히 밝아오는 벼랑 끝에 자포자기하며 앉아있다. 바다가 밝아오자, 그전에 한 번도 본 적 없던 색채의 빛이 대지를 비춘다. 그리고 존재는 덧없이 재로 부서진다. 다 타버린 인간의 몸뚱이, 낡은 신발 한 짝, 전신마비 환자의 초라한 웃음을 광활한 바다는 말없이 껴안고 영화는 끝난다.

다른 사람의 피로 생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흡혈귀의 존재론적 딜레마는 비단 영화 속 상현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후기자본주의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현대인들 대부분도 아마 그 와 같은 부조리로 꽁꽁 묶인 상황에서 하루하루 자기합리화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끊임없이 존재의 당위를 고민하고, 미안한 마음이라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 초라한 죄의식과 절망이 그래도 사람에게 뭔가를 기대할 수 있게 만드는 미약한 소망의 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ps 이글을 쓸 때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이 들렸다. <박쥐>의 뱀파이어 상현을 묘사하는 부분을 적다보니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도저히 평범하고 도덕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환경 안에서 한 인물이 정직하고 정의롭게 살아가려고 애썼을 때, 이미 비극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냉혈인간일 수 없었던, 뜨거운 이상을 품고 있던 마음 결 고운 분이 정치인 말고, 농부가 되셨으면 더 행복하셨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분의 죽음이 헛되이 재가 되어 땅에 묻히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 재가 다시 바다를 만나고, 떠오르는 해를 만나 하늘을 눈부시게 수놓았으면 좋겠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보았으면 좋겠다.

송보림 영화평론가  freehel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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