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근원  화성 비봉초교 교장

불과 물의 배치, 물을 생각하며 해바라기꽃밭을 조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해바라기가 연출하는 불꽃의 향연, 작은 소리에도 까만 열매들이 폭죽으로 터져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다. 

 휴일, 불구경 나온 사람들이 참 많다. 가로수 그늘 아래에서 해바라기를 그리는 가족들, 시를 짓는 꼬마 녀석들의 모습이 그림엽서보다 더 아름답다. 그 뒷모습으로 해바라기를 즐겨 노래하던 유명 시인들과 화가들의 모습이 겹쳐져 더더욱 아름답기만 하다.

해바라기꽃 위로 고추잠자리들의 군무가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아름답기 그지없다. 해바라기꽃들에게 밀려 변방에 왕따 모습으로 피어있는 코스모스들의 자태가 애처롭게까지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조그만 바람짓에도 코스모스들은 더 많이 흔들리며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끌고 있다. 

 해바라기꽃밭 주변, 디지털 카메라 앞에서는 웃음소리가 까르르 쉬지 않고 터져 나온다. 아주 가뭄에 콩 나듯, 아날로그 카메라 셔터 터지는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디지털 카메라 작동보다 몇 배 더 뜸을 들여 사진을 찍는 모습에 세월의 무상함마저 느낀다.

사계절 중 아날로그의 계절은 가을인 듯싶다. 모든 삶이 디지털화 되어 빠르고 톱니바퀴처럼 한 치 오차 없이 돌아가고 있어 뒤돌아볼 여유가 없다. 그 여유를 이번 가을에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자고 나면 신상품이라며 유혹하는 텔레비전과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게임물에서 몇 발자국 떨어져보자. 산정수리부터 단풍불이 켜켜이 내려오고 있는 가을산의 모습하며 달개비꽃잎 보다 더 진한 가을하늘, 밤마다 맑은 빛을 더해가는 초롱초롱 별떨기들을 바라보며 가을이 주는 선물에 흠뻑 빠져보자.

너무나 바쁘게 여유 없이 살아온 삶, 자연이 만든 거대한 텔레비전을 바라보며 깊은 사색의 우물에 빠져보자. 내 위주의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에서 벗어나 이웃과 함께하는 삶의 아름다움에 빠져보자. 그리고 만능 휴대폰에서도 몇 발자국 떨어져 보자.

버튼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간편함에서 벗어나 밤 이슥토록 풀벌레 소릴 담으며 편지를 쓰자. 그것도 인터넷 글자가 아닌, 또박또박 정성스럽게 친구에게 그리운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자. 우체통 속으로 톡 떨어지는 편지의 울림소리가 얼마나 정겹게 들려올까? 정말 오랜만에 웃는 우체통의 모습을 가슴 속으로 느끼는 것도 가을이 주는 선물이다. 

 바쁜 삶 속에서 나무 우듬지도 못 보며 지나치는 일상이다. 벌써 우듬지 부분의 나뭇잎이 물들기 시작하고 있다. 이제 빠른 속도로 화랑유원지의 해바라기 불의 향연도 사위어갈 것이다. 그 자리로 가을이 들어와 화랑유원지를, 우리들의 가슴을 아름답게 채색할 것이다. 나뭇잎들이 물들기 시작하고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가는 하늘, 또한 우리들의 가슴을 차분하게 적셔줄 아날로그의 계절, 가을이 오고 있다.

류근원 아동문학 작가  kwroo@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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