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낯간지럽지 않고, 적당히 기분 좋은 로맨틱코미디를 보고 잠이 들고 싶을 때가 있다. 머리는 복잡하고, 해야 할 일은 산더민데, 잠시 한 순간만은 달콤한 사탕맛이 간절히 그리워지는 심정이라고나 할까. 괜찮은 로맨틱코미디를 본지 한참 된 요즘, 간만에 이틀정도 약발이 가는 영화를 만났다. <500일의 썸머>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이별한다는 흔한 내용을 얼마나 창의적인 형식으로 변주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시간순서를 뒤섞는 편집, 고전적인 내레이션, 뮤지컬, 다큐멘터리 기법, 분할화면 등의 다양한 기교들이 극 흐름에 어울리게 녹아들면서 활력을 부여한다. 

이 영화는 술자리에서 한번쯤 토로했던 그녀(혹은 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 흔한 이야기를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게 되자, 순식간에 멜로는 코미디로 변하고, 구질구질한 연애실패담은 한 남자의 성장이야기로 탈바꿈한다. 썸머를 통해서 톰은 더 이상 뭘 더 바랄 것도 없는 환상과 참혹한 현실의 극단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것이 다 지나간 후에야 비로소 그게 자신이 보려고 하지 않았던 달콤한 오해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문제는 해답을 못 찾았기 때문이 아니라, 문제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종종 잊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톰은 끝까지 썸머가 왜 자신을 떠났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단지 톰이 깨달은 건, 썸머가 어느 순간 자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그가 더 이상 자학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순간, 톰은 비로소 이별을 극복하게 된다.

여주인공의 심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은 이 영화의 화법은 어쩌면 부당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썸머의 이별이유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 것이 <500일의 섬머>의 미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에 대해 다 안다고 섣불리 말하지 않고, 끝까지 그 사람을 ‘신비함’으로 남겨둘 수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이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톰에게 썸머는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남게 된다. 그 ‘이해할 수 없음’이 근본적으로 세상의 그 모든 연애를 이끌고 있는 동력이라면, 어떤 면에서 톰은 끝까지 섬머를 존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연애는 매일 보는 사람의 얼굴에서 매순간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만든다. 만약 그 계절이 다 지나가더라도 도저히 알 수 없는 영역이 남아있다면, 그건 또 다른 반복을 긍정할 수 있게 만드는 삶의 신비다.

 

영화평론가 송보림  threehel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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