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성식 변호사

각서는 화목한 가정에서도 종종 작성되곤 한다. 예를 들어 남편의 술자리가 잦다면 아내는 남편에게 투정이나 불평을 할 것이고, 남편은 자신 때문에 밤새 고생한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다시는 내가 과음하지 않겠다, 약속을 어기면 1,000만원을 주겠다”라는 내용의 각서를 써주기도 한다.

부부사이에 오고가는 각서는 부부관계가 심각할 정도로 악화되는 경우에도 작성되곤 하지만, 예를 든 것 처럼 부부관계가 좋은 상황에서도 작성되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아내가 각서 내용 그대로 남편에게 1,000만원을 지급해 달라고 한다면(사실 부부관계에 이상이 없다면, 아내의 계약이행은 상상하기는 힘들다), 남편은 이를 이행해야만 할까?

이에 대해 우리 민법은 제828조에서 ‘부부간의 계약은 혼인 중 언제든지 부부의 일방이 이를 취소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따라서 남편은 언제든지 위 각서 내용과 같은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이러한 규정이 생기게 된 이유는 부부간에는 일시적인 애정이나 강압에 의해 진심이 아닌 의사표시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취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부부간의 약속을 법률문제로 강제하는 것보다는 부부사이의 애정에 맡기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 예에서 남편은 아내와 계약을 취소함으로써 금 1,000만원 지급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취소권은 일정한 제한이 있다. 대법원은 ‘민법 제828조에서 혼인 중이라 함은 단지 형식적으로 혼인관계가 계속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으로는 물론 실질적으로도 원만한 혼인관계가 계속되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고 보아야 하므로 혼인관계가 비록 형식적으로는 계속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파탄에 이른 상태라면 위 규정에 의한 계약의 취소는 할 수 없다(1993. 11. 26. 선고 93다40072 판결)’라고 판단한 바 있다.

만약 남편이 ‘2010년 12월 31일 집 명의를 아내에게 해 준다’라는 각서를 써 주었는데, 부부관계가 악화되어 사실상 파탄에 이르게 되었다면, 아내는 각서에 따른 이행을 구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부부사이에 작성된 각서는 부부관계가 좋을 때에는 언제든지 취소하여 휴지로 만들 수 있지만, 부부관계가 악화되면, 그에 따른 이행이 문제될 수도 있다.

문성식 변호사  moon2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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