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 동화작가 (화랑초등학교 교장)

사라지고 또 다시 오는 게 시간이지만 이맘때만 되면 그 감회는 늘 새롭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올해와 새해는 시간의 연속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세월의 분계선을 만들어 놓고,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다가오는 새해를 희망으로 맞이하고 싶어하는 인간에게만 부여된 특권이기도 하다.

이제 신묘년도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 새로운 임진년 용띠의 해가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다. 여의주를 입에 물고 승천하려는 용의 모습을 떠올리면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더욱이 2012년은 60년 만에 돌아오는 임진년 흑룡띠의 해이다. 2007년 황금돼지해와 2010년 백호랑이해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벌써부터 업체들은 흑룡을 등에 업고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상상의 동물인 용은 중국에서는 상서로운 동물로 천자(天子)에 견주었고, 인도에서는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소중한 동물로 생각했다. 속담에 ‘용이 여의주를 얻고 범이 바람을 탐과 같다.’란 말이 있다. ‘무슨 일이든지 뜻한 바를 다 이룰 수 있다.’라는 말이다. 임진년엔 우리 모두가 여의주를 얻은 용이 되었으면 한다.

그런 마음을 담아 얼마 전 지인들에게 연하장을 보냈다. 한 자 한 자 붓으로 고마움을 써내려가며 뜬금없이 마중물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연륜 탓인가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러나 실소로 끝난 게 아니었다. 입 속에서는 쉬지 않고 마중물, 마중물이 맴도는 것이었다. 끝내 마중물은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로 데려다 주는 것이었다.

수도가 나오기 전, 시골집에 펌프가 있었다. 동네 끝자락의 샘에서 식수를 해결해야 했던 어려움에서 벗어난 펌프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땅 속 깊은 곳에서 여름엔 등골이 서늘한 물이, 겨울엔 차지 않은 물이 쏟아지던 물은 어린 눈에 폭포수로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한 바가지의 작은 물이었다. 펌프가 제대로 작동을 하려면 한 바가지의 물이 꼭 필요했다. 이 물이 없으면 펌프에서는 공에서 바람 빠져나가는 소리만 터져 나오곤 했다.

그 소중한 물이 마중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말이 몇 안 되는 느낌이다. 수년전 까지만 해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은 사랑이라고 열변을 토했던 그 시절이 부끄러울 정도이다. 사랑은 죽은 나무에서도 새순을 돋을 수 있게 하고, 돌멩이에도 이슬을 맺히게 한다며…….

예로부터 우리에겐 귀한 손님이 올 때, 멀리까지 나가서 손님을 맞이하는 아름다운 풍습이 있었다. 손님이 오면 주인이 마중을 나가 맞이하듯, 펌프질을 할 때 물을 부어 품어 올려 새 물을 맞이하는 물이라는 뜻으로 마중물이라 불렀다. 너무나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나에게 올 한 해 마중물 역할을 해 준 사람들을 떠올리며 고마워한다. 그리고 또 나는 누군가에게 마중물 같은 사람이 되지 않았나 깊은 생각에 빠진다. 그러나 나는 누구에겐가 마중물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부끄러운 자화상을 그린다.

새해엔 마중물 같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겠다. 희망을 노래하게 하고 꿈을 꾸게 하는 마중물이 정말 많아야겠다.

가정과 연인에게는 변치 않는 사랑을 퍼 올려주는 마중물, 학교에는 사랑의 교육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 호랑이 선생님 같은 호된 꾸지람을 할 수 있는 마중물, 사회엔 구석구석 불 밝혀 환한 웃음 흘러넘치게 하는 마중물, 기업에게는 노사를 한마음으로 엮어주는 마중물, 나라엔 세계 속으로 대한민국이 웅비할 수 있는 마중물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안산시민의 눈과 귀와 입이 되어주는 소중한 안산신문, 임진년에도 지역사회의 발전을 선도하는 최고 정론지로 마중물 역할을 충분히 하리라 믿는다. 안산시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물하는 마중물 신문이 될 것이다.

새 출발은 항상 희망적이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임진년 새해에는 작심삼일이란 말도 사라져야겠다. 국론이 조각조각 찢겨져 분열되는 일도 없어야겠다. 세계 경제가 그리 밝지 못하다. 그렇다고 미리부터 어깨 축 쳐져서는 안 된다. 독수리가 날기 위해 깃을 활짝 펴는 그 모습으로 우리도 임진년 새 하늘 속으로 훨훨 날아올라야 한다. 여의주를 문 흑룡처럼 날아올라야 한다.

새 출발의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는 사람들의 모습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임진년 새해엔 우리 모두가 누군가에게 마중물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안산신문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사랑과 기쁨과 배려의 마중물이 되길 소망해 본다.

류근원 동화작가 (안산화랑초등학교 교장)  kwroo@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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