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가요. 마포오!』
1955년 서울 어느 버스 정류장. 몇 대의 버스가 정차해 있고 버스차장들이 제각기 목청을 높여 행선지를 외치며 손님들을 불러모으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버스마다 차장들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정류장에 버스가 설 때마다 『스톱』 과 『오라이』를 외쳐서 운전기사에게 신호를 보내주고 승객들이 내리고 타면 문을 닫고 버스를 출발 시켰다.
그리고 승객들이 많이 타고 내림직한 주요 정류장에 버스가 서게되면 어느 정도 승객들이 버스 안에 가득 찰 때까지 호객행위를 계속하곤 했다. 따로히 운행시간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마음내키는 대로 손님이 차야 운행하는 버스인지라 약속시간을 어림해 정한다는 자체가 어려웠었다. 또한 자가용 승용차나 택시도 별로 없었고 교통수단이라고는 전차(電車)나 버스뿐이어서 약속시간을 지키기란 참으로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한두시간 시간을 어기는 일이 있어도 그럴 수 있으려니하고 이해를 했고 시간을 어긴 사람도 그렇게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게 시간을 어기는 일이 다반사인 우리의 시간관념을 가리켜서 우리는 「코리안 타임」이라고 자조 섞인 의미로 불렀었다.
1961년 5.16군사혁명 후로 교통질서를 비롯한 제반 기초질서가 확립돼감에 따라 「코리안 타임」의 부끄러웠던 오명도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가 싶었다. 그러나 요즈음 들어 우리들의 시간관념이 해이해지면서 약속시간을 안 지키는 사회풍조가 뿌리내리는가싶어 걱정스럽다. 실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얼마 전에 지도급인사들이 모이는 어느 모임에 참석했던 일이 있었다. 모임시간은 저녁 6시 30분이었는데 30분전인 6시쯤에 미리온 사람들이 모임장소가 마침 음식점이었는지라 기다리기가 무료하다면서 맥주를 시켜 마시기 시작했다. 드디어 6시 30분이 되었지만 그때까지 회장도 안 나오고 참석한 회원들이 몇 명 되지않아서 모임은 시작을 못했고 술은 맥주에서 소주로 바뀌었다. 결국 7시가 넘어서야 회장이 도착했고 모임은 예정시간보다 1시간이 지난 7시 30분에야 시작되었지만 그 때는 술들이 너무 취해있었고 분위기가 산만해져서 횡설수설하다가 모임은 끝을 내고 말았다. 그 날 모임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날 나는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하고 놀랐다. 하나는 회장을 비롯해서 시간에 늦은 사람들이 말로는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실은 그리 미안한 표정이 아니었다. 또 하나는 제대로 시간을 지켜서 참석한 회원들이 시간을 도둑맞아 손해를 본 듯한 기분으로 다음번 모임에는 자기들도 한 시간쯤 늦게 나와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결국 얼마 가지 않아 그 모임은 흐지부지 없어지고 말았다.
또 한번은 역시 지도급 인사들의 모임이었는데 버스를 대절해서 지방으로 단합대회를 떠나기로 했었다. 출발시간은 아침 7시였다. 거리도 멀었지만 시간이 늦으면 교통체증으로 운행시간이 몇 배나 더 걸리기 때문에 출발시간을 앞당겨 잡은 것이었다.
그러나 출발시간에 집합장소에 도착한 회원 수는 10여명에 불과했다. 회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부랴사랴 전화로 회원들에게 참석을 독촉했고 그렇게 법석을 떨다가 30여명의 회원을 태우고 버스가 출발한 것은 예정시간보다 1시간 30분이나 지연된 8시 30분 경이었다. 결국 도로체증에 걸려서 그 날 행사는 제대로 진행해 보지도 못하고 고생 끝에 집에 돌아온 것은 이튿날 새벽 1시도 넘은 늦은 시간이었다.
지난 6월에는 진한 감동의 물결이 우리가슴속으로 파도처럼 몰려와 넘쳤었다. 7천5백만 국민이 하나가 되었었다. 『대~한민국!』 「붉은악마」들의 외침 속에 우리는 「4강의 신화」를 이룩해 냈다. 축구 선진국의 대열에 낀 것이다.
그러나 약속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우리의 시간관념은 1950년대로 퇴보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약속시간을 어기고는 한결같이 『교통체증 때문에』 『차가 막혀서』라는 변명으로 정당화하려고 한다. 미안한 기색도 거의 없다. 정녕 「코리안 타임」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닌가?
-이재중 안산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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