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규 안산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지난 3월 어느 날, 부부 모임에서의 일이다. 허심탄회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중에 어느 반백의 노신사가 요즈음의 세태언어를 신랄하게 꼬집는 화두를 던져 좌중의 시선을 모은 적이 있다.

이야기인즉슨 ‘사람의 상표는 이름’인데 요즈음에는 너무 쉽게 가치를 떨어뜨리는 사람들이 많다며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듯이 우리 선조들은 이름을 소중하게 생각하여 태어나서 제일 먼저 인격체로 이름을 부여했단다.

이를 아명이라 하고, 성장하면서 관명, 자, 호, 시호 등의 이름을 사용하여 정중한 예의를 갖추었다는 이야기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눈치였다.

하긴 DJ, YS, JP 등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무식의 소치를 언론에서 조장하여 작금에는 아예 일상의 말까지도 줄여서 하는 바람에 소통이 안 될 정도이다.

거기에 더 심한 것은 부부지간에도 오빠, 허니, 자기 등등 이를 듣는 부모, 자식, 주위 사람들은 어떠할지 생각해 볼 일이다.

특히 여자들은 결혼한 후에는 아예 이름이 없어진다. 가끔 증명서 등을 작성할 때나 사용한다. 취업하면 미쓰 OOO 또는 성에 직책을 붙인다.

결혼해서 자녀가 있게 되면 누구 엄마, O여사, 남편의 직책에 OOO 사모님으로 불리기 일쑤다.

“여러분들은 사랑하는 부인을 어떻게 호칭하십니까?”

“.......”

나는 하루에 세 번 씩이나 변하는 호칭을 주책없이 늘어놓았다.

“처음부터는 아니지만 한 십여년을 저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새벽잠이 적는 남편은 일어나자마자 사과, 토마토, 당근, 고구마, 오디, 블루베리 등을 믹서에 갈아 주스를 만들어, 잠자는 나를 깨워서 내게 전달해 줍니다. 그냥 받느냐고요, 아닙니다. 남편은 ‘임희규 박사’ 이렇게 꼭 이름을 불러 깨워 줍니다. 그러면 나는 저절로 ‘고맙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받아, 쥬스를 마시며 아침 잠을 깹니다.

우리는 부부가 모두 아침에 출근하느라 바쁘지요. 그런데 저의 생활습관 중에는 아침식사 만은 가족이 같이해야 한다는 것은 부모님으로부터 철저히 습관화 되어 있습니다.

남편은 늘 ‘여보!’ 같이 먹고 하지…, 밤이 되면 우리 가족은 다 모입니다. 잠자리에 들 때는 ‘기영이 엄마! 잡시다’ 합니다.

남편은 내게 왜 아침에는 이름을 불러주는가? 한 인간으로 자기의 존재감을 갖고 하루를 시작하라는 의미를 두고, 아침식사에는 사랑을 담아 여보라 부르고, 잠을 잘 때는 우리 부부의 사랑의 결정체인 우리 아들의 이름을 붙여 부른다는 것입니다.

말을 끝내는 순간 좌중이 조용해졌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기에 행복한지는 못 느끼겠다며 남편이 나를 부르는 호칭의 의미부여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오늘 아침에도 물론 똑같은 호칭을 들었다. 이렇게 무심코 던진 한마디로 나를 즐겁게 할 수 있는 당신은 정말 멋쟁이 마술사가 아닌가? 문자라도 보내야겠다.

임희규 안산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webmaster@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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