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중 수필가

중환자실 옆 복도 한 구석에 의자 몇 개를 놓아 준 것이 전부인 이 대기실에는 하루에 두 번 면회가 허용되는 12시 면회를 하기 위한 면회객들이 모여들었고, 때도 없이 보호자를 찾는 의료진들 때문에 담요 한 장을 덮어쓰고 의자에 기대앉아 눈을 붙이던 보호자도 일어나 면회시간을 기다렸는데 모두가 침울하고 근심이 가득찬 모습을 이었다.

지역 문인의 원로인 L씨가 중환자실에 입원중이라 면회차 갔었는데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찾아간곳이 산부인과 였다. 그곳 대기실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았고, 곧 만나게 될 새 생명과의 대면을 상상하면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같은 병원안에 있는 두 개의 대기실 표정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드디어 12시가 되자 중환자실의 문이 열리면서 가족과 면회객들은 중환자실 안으로 들어가 각자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들중에서 가족과 친지들을 찾았다.

환자의 용태가 전번 면회시보다 조금이라도 호전 된것 같이 보이면 그렇게 좋아 할 수가 없었다. 연신 환자의 이름을 부르며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겠느냐?”고 묻고, 환자가 머리라도 끄덕거리면 환자의 손을 잡고 “그저 고맙다.”면서 감사의 눈물을 흘렀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환자들은 의식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 환자앞에선 가족이나 친지들은 묵묵히 서서 환자의 용태를 살펴 보았다, 얼굴색이며 손이며 발이며를 망막속에에 영원히 간직하려는 듯 내려다 보다가 담당 간호사에게 그동안의 용태를 묻고는 “면회가 끝났으니 나가달라”는 의료진의 독촉을 받으면서 중환자실을 나갔다.

내가 면회를 하러갔던 L씨는 마침 신장투석중이었는데 코와 입으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코에는 몇 개의 고무줄이 연결되어 있었고, 눈을 감은채 의식이 없는듯 똑바로 누워 있었다. “지금 의식이 없으신 것이냐?”는 물음에 신장투석을 하고 있던 여자의사는 “고통이 심해서 수면제 주사를 함께 놓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중환자실은 증세가 위중(危重) 하고 위독한 환자들을 하나의 병실에 수용하고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치료하는 곳이다. 중앙에 설치한 관리본부를 중심으로 해서 두줄 혹은 세줄로 환자들의 침대를 배치해 놓고 담당의사와 간호사들이 24시간 상주하면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우리가 면회를 하러 들어 갔을 때도 의사와 간호사들을 쉴 틈이 없었다. 그들의 긴장한 모습이 꼭 전쟁터 같았다. 환자의 용태에 따라 주사와 투약과 적응한 처치를 하면서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들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긴장, 그 자체였다. 환자 몸에서 오물이 쏟아져 나와도 표정하나 찡그리지 않고 침착하게 처리했고 거즈를 감아도 하나하나를 정성껏 감았다.

이들의 노력과 정성으로 건강을 회복해서 일반병실로 옮기거나 퇴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하니 귀중한 생명을 구해주는 이들에게 ‘백의의 천사’니 ‘나이팅게일’이라고 칭송해 부르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임종이 다가오면 환자를 집안에 편안하게 모시고 가족이나 친척들에게 연락해서 생을 마감하는 분의 마지막을 지키도록 했다. 이른바 임종이다. 부모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자식들은 불효를 저질렀다는 회한을 안고 살아야 했다. 그러나 사회의 여건이 변하면서 환자의 용태가 위급해지면 우선 찾게되는 곳이 병원중환자실이다. 전문의료진들에게서 마지막 진료라도 받게 하고 싶은것이 가족들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의사나 간호사들은 환자의 죽음을 확인하고 임종까지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궂은 일을 마다 않고 병상을 지키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중환자실의 의료진들이야말로 우리사회의 진정한 봉사자가 아닌가 싶다.

이재중 수필가  webmaster@ansansm.co.kr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