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건

안산(安山)의 이미지는 현대에 꽂혀있다.

반월공단, 시화호, 다문화거리 등이 주요 퍼즐로 대부분 산업화의 산물이다. 최근에는 안타까운 세월호 사고의 피해지로 알려졌다. 이런 강한 이미지 때문에 그 이면의 모습은 지나치기 쉽다.

안산이란 지명은 고려 때부터 불리어왔다. 천년 된 도시로, 우리나라에서 동일지명으로 이만큼의 역사를 가진 곳은 많지 않다.

고려시대에는 권력의 중심에 선 안산 김씨 가문이 득세했고, 문화의 황금기인 문종 때는 외가(外家)인 안산이 읍격으로 승격했다. 안산의 진가는 조선시대에 와서도 계속된다.

실학의 중조(中祖)인 성호 이익(星湖 李瀷:1681~1763) 선생은 이곳에서 평생 백성의 삶에 밀착된 실질적인 학문을 닦았다. 진주 유씨(晋州 柳氏)가문의 유명천(柳命天), 유명현(柳命賢) 형제의 청문당(淸聞堂)과 경성당(竟成堂)은 만권의 소장으로 사대부 문화를 꽃핀 거점이었다.

후손인 유경종(柳慶種)은 a매형인 화가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1713~1791)을 불러들였고, 그는 30년 동안 이곳에서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다. 표암은 당시 ‘예림의 총수(總帥)’로 조선 화단을 장악했으니 그를 만나러 이곳을 드나들었던 문인ㆍ화가들의 발자국을 짐작할 수 있다.

학문의 성호와 예술의 표암이 안산에서 이룬 성과는 고려 문종 때의 르네상스가 고스란히 조선으로 옮겨온 것이라 하겠다.

필자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과거의 유산을 토대로 안산의 현재와 미래를 밝히기 위해서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현대에 얼룩진 도시 이미지는 세월호 사고로 더욱 침체됐다.

이제 세월호도 올라왔고 상처도 아물고 있다. 이럴 때 새로운 도시 이미지가 필요하다. 기존의 이미지를 혁신할 반전의 드라마가 필요한 것이다. 그 해답은 과거의 유산에 있다.

필자가 제시하는 인물은 바로 성호 이익 선생이다. 그 이유는 바로 선생의 그릇 크기 때문이다. 선생의 업적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제자 육성이다.

당시 문하생은 성리학을 따르는 계열과 천주교를 수용하자는 서학(西學) 계열로 나뉘고 있었다. 요즘 식으로 전자는 우파요, 후자는 좌파인 셈이다. 선생 생전에도 두 계열은 대립했고, 특히 우파는 서학을 감싸는 선생의 태도에 대해 줄기차게 질문했다.

여기에 성호 선생은 일일이 답변하며 제자를 다독거렸다. 이런 선생의 열린 사고는 모든 것을 수용하는 산과 강 같은 존재였다.

선생은 당시 권력에서 밀려난 근기남인(近畿南人)의 맏형으로 꿋꿋한 지주였다. 선생이 살았을 때 안산은 근기남인 뿐 아니라, 영남에서 상경하는 남인들의 발걸음으로 문이 닳았다.

한양에 입성하기 전에 이곳 안산에 들러 선생께 문안 인사를 드렸던 것이다. 당시 안산이 가졌을 위상이 어땠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화두를 꼽는다면 보수와 진보가 빠질 수 없다. 두 진영의 대립과 반목은 지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거치면서 더욱 노골화됐다. 촛불과 태극기로 상징되는 두 진영은 국가 존립마저 위태롭게 여길 정도로 극심했다. 새 정부는 국민 대통합을 이룰 과제에 직면해있다.

정조 임금은 탕평(蕩平)정치를 위해 규장각을 설립하여 본관을 ‘주합루(宙合樓)’라고 명명했다. 이태진 교수는 여기서 유래한 말로 ’주합공립(宙合共立)‘이라 붙였다. 즉 모든 것을 포용하는 큰 집이란 뜻이다. 이 시대 ’통합의 아이콘‘으로 성호 이익 선생만한 분이 있을까? 오늘 날 좌익보다 더 위험한 서학을 성리학에 대척하지 않고 시대의 고민을 해결할 방편으로 여겼던 큰 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호 선생을 이 시대에 새롭게 조명해 되살려야 한다.

일동에는 성호기념관이 건립돼 있다. 바로 이웃에는 선생의 묘소가 있어 좋은 짝을 이룬다. 현재 선생을 기리는 것으로 기념관외에 숭모제와 성호 문화제가 맥을 유지할 뿐이다. 솔직히 말해 예산 치르기에 급급한 요식행위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인상이다.

성호 선생의 존재도 끌어올려야 한다.

니체(Nietzsche)는 “도시의 품격은 그 고장이 배출한 인물을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했다. 실학의 중추(中樞)로써 선생의 가치가 오랫동안 빛이 바래있다. 시대의 과제인 통합의 아이콘 성호 이익 선생, 그 저작권이 이곳 안산에 있다.

도시의 이미지를 일신(日新)할 소중한 자산이 눈앞에 있다. 안산도 바꾸고 대한민국도 묶을 인물 말이다. 그래야만 고려부터 조선까지 이어온 문화유전자가 후손까지 전해질 수 있다. 현대의 문예부흥이 후손의 몫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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