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차나 기차 안에서 졸음이 와도 마음 놓고 졸지를 못한다.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한 노숙자가 열차에서 자고 있던 승객을 아무런 이유 없이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는 뉴스를 보고 난 후부터다.
전동차 안으로 묵직한 가방이나 플라스틱통을 들고 들어오는 사람을 보면 바짝 긴장한다. 혹시 신나를 뿌리고 불을 지르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다. 전동차 안에 눈빛이 이상하거나 거동이 조금만 수상한 사람을 보아도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다.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제 정신을 가지고는 살아가기가 힘들어 모두가 돌아버린 것만 같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이 『묻지마 살인』을 했다고 하는가 하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기의 분신인 자식을 가족을 목 졸라 죽였다는 뉴스가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제 정신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겠나?
그럼 왜 이렇게 미쳐버렸을까? 미칠 수밖에 없는 사연을 몇 가지 살펴보기로 하자. 윤창열 이라는 젊은 사업가가 있다. 그는 중ㆍ고교 검정고시 출신에다 입지전적인 사업가로서의 광채도 받았다. 1조원 대의 『굿 모닝 시티』상가 사업을 착수할 때 수중에 가진 돈은 7억원. 그것도 사채업자로부터 빌린 것이다. 건물 부지 한 평 확보하지 않은 채 분양을 시작해서 3천여명으로부터 3476억원을 끌어 모아 횡령했다. 금융권으로부터도 돈을 빌려 횡령 액수는 5천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굿 모닝 시티를 분양한지 2년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건축허가 사전 절차의 하나인 건축 심의만 받아놓은 상태일 뿐 토지 매입을 끝내지도 건축 허가를 받지도 못했다.
윤창열 씨는 이렇게 끌어 모은 돈을 정치계 관계 등 각계 각층에 마구 뿌려댔다. 심지어는 y대학교에 장학 기금으로 7억원을 기탁하고 『입지전적인 사업가』라는 칭송까지 들었다고 한다. 또 자산 규모 2천억원이 넘는 중견 건설업체를 집어 삼키기도 했다.
이렇게 휘황찬란하고 위세 있게 나가던 그가 계획했던 목적지에 다다르자 부도를 내고 말았다. 부도가 나자 사방에서 난리가 났다. 이 와중에서 몇 억 인가 돈을 받았다는 중견 정치인은 『영수증을 써 주고 대가성 없이 받은 정치자금일 뿐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 될 것이 없다』면서 당과 국회일이 바쁘다고 얼마 동안을 검찰의 출두 요구에 응하지 않았었다.
그중에도 가장 딱하고 곤경에 빠진 것은 사기를 당한 서민들 이였다. 이들 중에는 『남편이 하늘나라 떠나고 남긴 돈 남편의 목숨과 바꾼 그 돈. 그 피 같은 돈을 애들 용돈도 제대로 안주고 아낀 돈을... 상처를 가슴에 묻고 다시 일어서서 2004년에는 내 점포 하나 가질 날의 작은 소망의 꿈을 키우며 살아왔는데 또 내게 이런 시련이 닥치느냐』고 통곡하는 어느 아낙네 어찌 그녀뿐이겠는가? 40년 넘게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해 모은 돈을 몽땅 잃고 실신한 노인도 있고 아내의 암 수술비까지 빼서 마련한 돈을 날린 영세 상인도 있고 군부대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아들 보상금에 빚까지 보태 투자했다며 땅을 치는 할머니도 있다.
이들에게는 앞날에 대한 아무런 기약도 없다. 잃어버린 돈을 다시 찾을 길도 없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도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다. 이들의 피와 살같은 귀중한 돈을 나누어 먹은 힘 있는 사람들은 배구공을 「토스」하듯 자기의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하고 있을 뿐이다.
또 지난 정권의 2인자로 불리던 권 모씨가 쓰러져 가는 기업으로부터 20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되었다. 보도에 의하면 현금이 든 50개의 박스를 차에 싣고 압구정동 으슥한 곳에서 4차례에 걸쳐 극비리에 건네받았다고 한다.
현금 200억원(1만원권 2백만장)은 무게로 환산하면 2톤 1열로 나열하면 322km에 이르는 분량이라고 한다. 서민들은 언감생심 상상도 못할 거액이다.
또 우리의 영혼을 구제한다는 y종교 단체에서는 교리에 이의를 제기 하거나 교단이나 교주의 비리를 문제 삼았다는 이유로 신도 9명을 살해해서 암매장 했는데 그 중 시신 몇 구가 발굴돼서 교주를 긴급 체포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미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요즈음 한여름 청량제와 같은 신선한 이야기가 보도 되었다. 철도 역무원이 자신의 몸을 던져 아이를 구한 뒤 자신은 열차에 치여 두 발목을 잃었다고 한다.
지난 7월 25일 오전 9시. 서울역을 출발해 부산으로 가는 새마을호가 영등포역에 정차하기 위해 역내로 들어오는 순간 승강장에선 5～6세로 보이는 한 아이가 안전선 바깥으로 아장아장 뛰어 나갔다.
직감적으로 아이가 위험하다고 생각한 역무원 김행균(42)씨는 아이가 안전선 안으로 물러나도록 급히 호루라기를 불었다. 그러나 아이가 계속 선로 쪽으로 다가가자 김씨는 기차를 세우기 위해 기관사에게 급히 수신호를 보냈으나 기차가 정차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다급해진 김씨는 재빨리 뛰어가 아이를 안전선 안쪽으로 밀어 냈으나 정작 자신은 몸의 중심을 잃고 50cm아래 선로로 떨어졌다. 역 안으로 기차가 들어오는 것을 본 김씨는 서둘러 바로 옆 상행선 선로로 몸을 피했으나 왼쪽 발목이 미쳐 빠져 나오지 못했다. 사고 직후 김씨는 왼쪽 발목과 오른쪽 발등이 잘린 상황에서도 동료 직원들에게 자신이 구한 아이의 안전을 먼저 걱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씨의 희생적 선행이 있고 난 후 사이버 공간에는 김씨를 돕고 싶다는 글이 잇달아 올라온다고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사고가 난 후 한달이 지난 오늘까지 아이의 부모나 정부나 고위 당국자의 특별한 약속이나 치하의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반듯한 사회를 만들려면 이런 선행의 희생자를 사회의 귀감으로 삼아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쉬는 얼이 되도록 해야 하고 그를 본받고 존경 하며 「선행의 희생이 아름다운 사회 정의」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
반듯한 사회를 만들려면 좋은 일 한 사람 잘한 일 한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보상과 대우를 반드시 해주어야 한다. 반면에 나쁜 일 잘못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벌을 주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벌을 주는 데 있어서는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엄격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옛날 제갈공명이 울면서 마직의 목을 베었다는 사실(史實)의 교훈을 깊히 새겨야 한다.
<이재중 논설위원님 webmaster@an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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