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매미도 있다.”
불과 여섯 시간 남짓 되는 동안 태풍 매미는 147만 가구를 정전 시켰고 1조8000억의 재산을 못쓰게 만들었다. 해일을 끌어다 어시장을 덮치고 암석을 몰아다 도로를 메우고 비를 퍼부어 농기구와 살림살이를 물에 떠다니게 했다. 벼가 자라던 논은 늪이 되었고 물건을 만들던 공장은 쑥대밭이 되었다. 사망실종이 117명 이재민이 3323가구에 8938명이라고 하니 참으로 넋을 잃고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이거 매미 맞는가?”
그리고 이렇게 쓸 수 밖에
“2003년 9월12일 이런 매미도 있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매미는 그렇게 우습게 볼 곤충이 아니다. 파브르는 그의 <곤충기>에서 매미가 울고 있는 곁에서는 대포를 쏘아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썼다. 그 매미소리에 온 동네가 밤잠을 설치는 소동이 서울 어디선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배기구 안쪽에 발음근발진막 공명실등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어 그토록 작은 것이 그리도 크게 울수 있는 위력을 매미는 갖고 있다. 그 위력은 유충기의 잠재력에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 알에서 45일만에 부화한 매미는 그 후 무려 5년11개월 동안이나 땅 속에서 굼벵이이의 모습으로 때를 기다린다. 길어야 3주 아니면 1주일에 불과한 삶을 위하여 이렇게 긴 기간을 준비하는 동물은 매미밖에 없을 것이다. 곤충학자들에 의하면 북아메라카에는 17년을 그렇게 준비하는 매미가 있다고 한다. 어쩌면 이번 태풍이 남태평양 어디선가 그렇게 준비하고 있다 불어 온 비바람은 아닐런지.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정치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서 속전속결 모래위에 집을 지으려는 근성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더 많은 피해를 보게 된 것은 없는지 점검해 볼 일이다.
태풍의 이름이 왜 매미였는가. 아시아 태풍위원회가 의뢰하여 남북한이 10개씩 제출한 태풍의 이름을 보면 개미 매미 나비 제비 기러기 버들 나리봉선화민들레등등 한결같이 연약하고 온순하고 부드러운 것들이다. 1959년에 몰아쳤던 태풍의 이름은 사라였다. 사라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중 드물게 곱고 아름다워 아브라함이 애굽 피난시절 왕에게 빼앗길번 했고 남편을 주라 고백할만큼 순종하는 여인이었이다. 그러나 그 해 9월17일 추석날 불어닥친 사라라는 이름의 평균초속45미터의 바람은 사망자781명 실종자206명 이재민 37만명이라는 가공할 피해상황을 만들어 놓고 유유히 사라져 갔다. 성경의 그 아름답고 유순한 여자 사라가 어떤 인물인가. 자기 스스로 남편에게 첩으로 들여보낸 여자 하갈을 두번씩이나 광야로 쫓아낸 일면 무서운 여자이기도 하다. 사라호 태풍을 보면서 사람들은 뭐라 했을까. 아마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라도 화나면 무섭다.”
또 이렇게 쓰지 않았을까.
“1959년 9월 17일 이런 사라도 있었다.”
나무도 꽃도 이름이 있고 강아지도 이름이 있듯이 태풍에도 이름이 있다. 태풍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 것은 1953년부터이다. 당시 호주 예보관들은 자기들이 싫어하는 정치가의 이름을 붙여 “앤더슨이 엄청난 재난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이 유래가 되어 2차대전후부터 매년 일어나는 30여개의 태풍에 공식명칭을 사용해 왔다. 무슨 이름이든지 이름에는 지은이의 느낌과 희망이 담겨 있게 마련이다. 태풍의 이름에 담겨 있는 제발 온순했으면 하는 마음과는 달리 사납기 그지없는 바람을 보며 우리가 느껴야 할 것은 배신감이어야 할까. 아니면 좌절감이어야 할까. 그를 넘어선 겸손함이어야 할까.
개구리는 땅속에서 매미는 나무 위에서 비를 부른다는 말이 있다. 매미도 비를 부를 수 있다는 생각 그것이 겸손이다. 매미가 태풍을 막아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 그것도 겸손이다. 부적 한 장 써 붙이고 모든 것이 잘 될 거라 믿는 사람처럼 태풍의 이름을 <매미>라 붙여 놓고 바람이 매미처럼 무기력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미신일뿐이다. 제갈공명이 바람을 좌지우지했다지만 바람은 사람이 다스릴 수 없는 자연의 힘이다. 지진 화산의 폭발 가뭄 폭설등 사람이 다스릴 수 없는 힘은 그 외에도 많다. 시인 영랑은 그 힘 앞에 서서 조용히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고 했다. 유교에서는 매미의 머리는 관(冠)의 끈이 늘어진 현상이므로 문(文)이 있고 이슬만 먹고살아 청(淸)이 있고 곡식을 먹지 않으니 염(廉)이 있고 집을 짓지 않으니 검(儉)이 있고 철에 맞추어 허물을 벗고 절도를 지키니 신(信)이 있어 군자가 지녀야 할 오덕(五德)을 갖추었다고 하였다.
다시 햇빛이 나고 사람들은 젖은 이불을 내다 말린다. 죽거나 실종된 가족 때문에 울 힘도 없는 사람들이 하늘을 쳐다본다. 다시 높아진 하늘 아무 일도 없었었다는 듯 흘러가는 구름이 야속하기만 한데 밤나무 느티나무 푸름 속에서 들려 오는 저 소리 매미소리다. 누가 매미를 우습게 보았던가. 7년을 하루같이 진흙 속에서 절치부심 기다려 왔던 여름 마침내 껍질을 벗고 두 쌍의 청옥빛 날개와 두 개의 겹눈을 가지고 세상 속으로 나와 저토록 청아하게 울어대는 매미소리는 초가을 햇볕보다 더 따갑기만 하다.
매미는 죄가 없다 이름 빌려준 죄 밖에. 어쩌면 자기 이름이 도용된 줄도 모르고 태풍속에 어디멘가 숨어 있다가 이제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울음을 대신 울어주고 있는지도 모르른다. 그 매미를 무시한 우리 우리가 죄인이다. 독수리같은 날개도 없고 사자같은 이빨도 없고 호랑이 같은 발톱도 없다고 우습게 보고 만만하게 보았던 우리 매미 대하듯 땅을 대하고 하늘을 대했던 우리 이제 다시 서기로 하자 겸허한 마음으로 무너져 내리던 산 앞에 덮쳐 오던 해일 앞에 물 앞에 바람 앞에 구름 앞에 하늘 앞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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