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한토끼<바두르 오스카르손>

바두르 오스카르손은 북유럽의 작은 나라 페로 제도에서 태어나 작가, 삽화가, 미술가로 활동 중이다. 작가는 첫 그림책 <개와 고양이와 쥐>로 북서유럽 아동청소년문학상을 받았다. 최근작인 <나무>는 2018년 북유럽 아동청소년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매일 밤 자녀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었는데, 같은 책을 읽어도 새로움을 줄 수 있는 그림책을 찾다가 직접 그림책 만들기를 시도했다고 한다. 아이와 부모, 그리고 작가 모두가 생각할 수 있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에서 그림책들이 탄생한 것이다. 그의 그림책들은 많은 생각거리를 준다.
  표지는 개와 쥐가 ‘납작한 토끼’ 글자를 쳐다보고 있는 모습을 하늘에서 보는 시선이다. 만화 캐릭터처럼 그려진 쥐와 개는 ‘납작한 토끼’ 글자를 왜 보고 있는 것일까? 궁금증을 갖고 책장을 넘기면 개 한 마리가 나온다. 개는 위를 쳐다보고 있다. 무엇을 보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런데, 그냥 멍하니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걱정과 안도감으로 쳐다보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더욱 궁금증을 유발한다.
  한 장 더 넘겨본다. 왼쪽에는 하수구 망 하나가 있고, 오른쪽 화면에는 개가 길을 가고 있다. 도로 옆 보행자 길을 걷고 있다. 다음 장은 코너를 돌아서 걸어온 개가 도로 바닥에 납작해진 채로 있는 토끼를 발견한다. 몸을 대자로 뻗고 혀를 내밀고 있는 토끼. 로드 킬로 죽은 토끼다. 죽음. 작가는 ‘죽음’이란 단어를 ‘납작한 토끼’로 표현했다. 죽음이라고 하면 대부분 어둡고 부정적인 감정을 떠올리는데, 죽음 그 자체로 표현하고자 납작한 토끼를 사용한다. 책을 보던 8세 아이가 납작한 토끼를 보더니 죽은 토끼라고 바로 알아차린다. 어린이의 시선으로 사물을 보고 표현한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지나가던 쥐도 납작한 토끼를 발견하고 “저런! 저 토끼 좀 봐!” 하고 말한다. 개는 흠칫 놀라면서 토끼가 저기서 뭘 하고 있나 생각하던 중이라고 한다. 토끼가 저기서 뭘 하고 있나 생각하고 있었다니. 죽은 토끼 아니었나? “완전 납작하네.” 쥐가 말한다. 한 번 더 죽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대화다. 우리도 지인의 죽음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부정하고 죽었음을 인정하지 않다가 나중에 죽음을 인정한다. 둘은 한참동안 토끼를 쳐다보다가 아는 토끼인지 생각한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34호에서 사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한다.
  그런데, 그 다음 쥐의 대사가 한 방 때린다. “저렇게 누워 있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 도로 바닥에 누워있으면 재미가 없다는 말인가? 죽어서 누워있는데 재미를 찾다니! 쥐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옮겨주자고 한다. 그런데, 어디로 옮겨야 할까? 34호? 경찰에게? 개는 너무 열심히 생각하느라 머리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다. 이렇게 하면 이럴 것 같고 저렇게 하면 저럴 것 같고. 그러던 차에 공원에서 연을 날리는 토끼를 발견한다. 개와 고양이는 집안에서 밤새 무언가를 만든다.
  다음날 개는 둘이 만든 것을 꽤 마음에 들어 하지만, 쥐는 테이프가 잘 붙어 있을지 걱정이 된다. 개는 쥐를 안심시키고 공원으로 나가 연을 띄운다. 납작한 토기를 매단 연을 띄우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적당히 불어오는 바람에 개가 엄청 빨리 달린다. 그때 뒤에서 쥐가 연을 지켜봐 준다. 겨우 연을 띄운 개와 쥐. 둘은 오랫동안 말없이 연을 바라본다. 한참 뒤 눈으로는 연을 보면서 둘은 말한다. “토끼가 좋아하고 있을까?” 하늘 위에서 날고 있는 토끼. 토끼는 지금 좋아하고 있을까? 토끼는 뭐라고 말할까? 토끼를 보내는 의식을 잘 치러줘서 고마워할까? 34호로 가지 않아서 좋아할까? 하늘을 날아서 하늘나라로 가게 해줘서 좋아할까?
  이 그림책의 구성은 왼쪽 페이지에 대사, 오른쪽 페이지에 그림을 넣었다. 책장을 넘기면서 그림의 흐름이 연결된다. 그리고 왼쪽 글 위에 위치한 작은 모티프의 삽화는 다음 화면을 예고하기도 하고 또 다른 생각거리를 준다. 연필로 스케치한 부분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둔 그림들. 가는 펜 드로잉, 환하지 않은 색상, 느릿느릿 진행되는 이야기, 모호하게 끝나는 이야기는 이상한 나라에 온 듯한 기분이다.
  열린 결말을 힘들어하는 분들이라면 망설여지는 그림책이겠지만, 다양한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책을 찾는다면 <납작한 토끼>만한 그림책은 없다. 이 책은 죽음을 접했을 때 우리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잔잔하게 일깨워주고 있다. 테이프가 잘 붙어있는지 걱정하는 장면에서는 진심이 느껴지고 “토끼는 좋아하고 있을까?”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토끼 당사자의 기분을 중요시하며, 쥐에게도 연을 날리도록 줄을 건네주는 장면에서는 아픔과 슬픔을 공유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그런데 토끼는 정말 좋아하고 있을까?

최소은<안산중앙도서관 시민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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