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 시절 옷 로비 사건 청문회에 나온 주인공이 사치성에 대한 변명으로 십년 전 구입한 옷을 흔들어 보이며 평소 검소한 생활을 증명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은 혼사를 앞둔 자녀를 핑계로 없는 사람 전세 값 보다 비싼 옷을 구입했다고 실토하여 남편의 지체와 품위를 포기한 이중성을 드러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그들의 탁월한 이중성에 대해서 절대로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평소 주위사람들로부터 성품이 강직하고 검소하며 실속 있고 불의를 보면 흥분하지 않고도 분노할 줄 아는 지성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내가 실인즉 사교육 기관에 오랜 기간 근무하면서 졸업생들의 취업과 관련하여 크고 작은 뇌물성 선물도 받아왔고 한번은 사무실을 이전하며 위치나 조건이 마음에 꼭 드는 건물을 임대하려 했으나 이미 분양이 완료돼 미계약분이 없었다. 고심하던 끝에 권한을 가진 사람에게 뇌물성 선물을 바치고 인간적인 대화와 설득으로 소정의 목적을 달성 할 수 있었다. 당시 그 일로 성취감까지 느꼈던 이중성을 가진 내가 어찌 그들을 비난 할 수 있겠나? ……」하는 내용 이였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그의 이중성을 지탄하기 보다는 순진성(?)에 감탄해 버리고 말았다.
사람의 「이중성」을 잘 나타낸 작품으로 영국의 단편작가 스티븐슨의 작품 가운데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소설이 있다. 이 단편 속에서 우리는 인간 자신의 이중성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지킬 박사처럼 선하고 바르게 살고 싶어 하는 욕망의 본성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하이드처럼 남을 짓 밝고 올라서려는 횡포와 탐욕과 욕정에 이끌리는 본성이 존재하고 있다.
사랑과 칭찬 뒤에는 미움과 시기의 위선이 숨어있으며 겸손 뒤에는 교만과 건방짐이 노려보고 있으며 존경과 착함 뒤에는 음흉함이 뿌리 박혀있다.
한 심령 속에 존재하는 이 두 얼굴의 대립 가운데서 우리는 당황하고 때로는 흔들리며 자신을 자책하고 미워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사람의 이중성」 때문에 아주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부부가 한 이불 속에 누워 자면서 제각기 배우자 몰래 관리하고 있는 비자금을 계산해 본다던지 채팅으로 만났던 상대자를 생각하는 것은 애교로 보아 줄 수도 있겠다. 그것은 문제가 터지더라도 두 사람에게 국한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인(公人)의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그것은 개인 한 사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사회 전체에 미치는 파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어느 방송사 사장이 작년에 '병역 면제는 자녀의 미국 국적 취득 문제 등과 함께 특수 계급이 누려온 특권적 행태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고 맹 비난하는 신문 칼럼을 썼는데 알고 보니 이 사람의 아들 2명 모두가 미국 국적을 취득해 병역 면제를 받은 사실이 드러난 것은 사회 정의를 훼손시키고 도덕성에 흙탕물을 끼얹은 행위로 지탄 받아야 마땅하다.
또한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이 한 몸 다 바쳐서 신명을 다 하고 있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더니 뇌물죄에 연루되어서 지상(紙上)에 그 이름이 오르내린 것이 어디 한 두 사람인가? 그들은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는 순간 까지도 "절대로 그런 일 없다"고 부인했다. 나아가서 깨끗하고 양심적인 자신을 모함하는 정치적 모략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밤샘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그에게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금액을 수뢰한 죄목이 붙어서 그를 지지해 표를 찍어주었던 순진한 서민들에게 자기 손가락을 잘라 버리고 싶도록 깊은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자산 규모 2천억 원이 넘는 중견 건설업체를 인수하고 1조원 대의 「굿모닝 시티」상가 사업을 착수해 5천억 원의 돈을 끌어 모으고 여기 저기 기부도하고 장학기금도 내 놓고 뇌물도 바치고 돈을 물 쓰듯 펑펑 써 제키던 그래서 「입지전적인 사업가」로 칭송 받아 오던 인물이 알고 보니 토지 매입을 끝내지도 건축 허가를 받지도 않은 사기꾼 이였다니… 사기를 당한 3천 여명의 서민들은 땅을 치며 통곡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람의 이중성」은 사회를 멍들고 미치게 만들고 있다. 요지경 같은 이 난장판 속에서 미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머언 옛날도 아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아버지가 어디쯤 오시는지 머리 좀 긁어봐라"고 어린 아기에게 시켰다. 그래서 앞 이마에서 가까운 부분을 긁으면 "집 근처에 다 오셨나보다"고 했다. 우스개 갖지만 그 시절에는 흔히 볼 수 있었던 일이다.
달리 통신 시설도 없던 때인지라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늘은 어떤가? 핸드폰의 다이얼 버튼만 누르면 달리는 전철 안에서 거리를 걸어가면서 연결되어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는 세상이 되였다. 그리고 내시경이나 초음파를 통해서 사람의 몸속을 마음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과학이 그만큼 발달한 것이다.
만약에 … 만약에. 과학이 더욱 발달해서 「마음의 창」을 열고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는 "죽도록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사랑의 맹세를 애써서 할 필요가 없고 죄가 있는지? 없는지? 를 조사하는 수사관도 있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언제든지 그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되니까 …‥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이런 세상이 되면 얼마나 편리 하고 좋겠느냐"고 몇몇 사람에게 동의를 구했더니 예상 밖의 대답들을 했다. "숨이 막혀 못살 것이다" "세상사는 재미가 없을 거다" "말세가 올 것이다"…등등 부정적인 대답으로 일관했다.
왜 그럴까? 「자신의 이중성」을 들여다 보이는 데서 오는 두려움 때문일까?
<이재중 노설위원님 webmaster@an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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