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조재면>

  아들과 손자를 사랑하는 한 할아버지가 그들의 논술 공부를 위해 사설을 들고 나섰다. 이 책은 2대에 걸친 사설 공부를 하게 된 계기와, 조정래 작가의 아들과 손자에 대한 애틋한 심중이 잘 나와 있는 ‘책머리에’를 시작으로, 아들 도현이가 또박또박 필사한 사설 한편이 실려 있다.
  본문으로 들어가면 모두 5장으로 엮어져 있는데, 각 장마다 손자 재면의 글이 먼저 실려 있고, 그 다음 할아버지인 조정래 작가의 사설이 손자의 사설에 의미를 보탠다. 또한 손자가 쓴 원본을 할아버지가 감수한 게 그대로 실려 있어서, 같은 내용의 글도 어떻게 고치느냐에 따라 얼마나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는지 알 수 있어 글쓰기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빨갱이라는 오명을 쓰고 군대에서 수없이 당한 폭행으로, 평생 목 디스크로 고생하는 아들을 보며 분통을 터트리고, 공부에 손자를 빼앗겨 억울해하는 영락없는 할아버지, 《아리랑》, 《태백산맥》그리고 《한강》, 《천년의 질문》까지…. 우리에게는 거대한 산처럼 보이는 그조차도 자식이나 손자에 대한 애틋함은 범부와 그리 다르지 않다.
  저자는 2015년 3월의 어느 날, 무심코 신문을 넘기다가 같은 문제를 다룬 두 신문사의 사설이 나란히 실려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제 삼자 입장에 선 전문가가, 동일한 사건이나 문제에 대해 다른 시각이나 논리로 전개된 두 사설을 비교, 분석하고 평가한 글을 발견하고 머릿속에 환한 전등이 켜졌다고 한다. 단순히 입시를 앞둔 학생들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도 균형 잡힌 사고와 다양한 인식을 갖추는 데 효과적인 도움을 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장, 단 하나의 시각으로 역사를 해석할 수 있는가 에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대해, 정부가 개입하여 역사에 대한 해석을 함부로 재단하려는 것과, 사고의 획일화를 추구하면서 창의 교육, 민주적 시민 교육을 교육 이념으로 내세우고 있는 불합리한 현실을 비판하고, 자식이 과연 아버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느냐는 등, 10대(고 2)의 시선이라고 보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논리정연하게 씌어져 있다.
  이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 교과서 채택률 0%까지 더해 무려 두 번 탄핵 당한 셈인데도, 그저 현실을 무시하고 효녀 노릇만 하려고 한 것에 대한 어리석음을 탓하며 역사는 꾸며지는 연극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3장, 청소년의 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가능한가에서 손자는, 게임을 할 수 밖에 없는 사회를 만들어 놓고 그 대안으로 게임 셧다운제만 만들어 놓는다고 해결될 수는 없다며, 기성세대의 무능력과 무책임을 비판하고 우리사회가 마주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보다 거시적이고, 근본적, 장기적인 관점에서 다가서야 한다며 변화를 촉구한다.
  이에 할아버지는 인간의, 인간다운 교육은, 잘하는 사람만을 뽑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좀 모자라더라도, 한사람도 버려지는 일 없이 모두가 사람노릇을 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그 능력과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하는 것이어야 하고, 그것만이 참된 교육이라고 생각하고 올바른 길로 향할 때 게임중독자는 생겨나지 않고, 엉뚱한 법도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조롱당하는 허수아비 법’이라고 정의 내린다.
  이 외에도 우리 사회에 큰 이슈가 된, 기업이 사회적으로 기능해야 할 역할을 저버린 가습기 살균제가 세월 호 사건에 묻혀버린 일, 남자와 여자의 성역할과 의미를 묻는 페미니즘, 세계를 지배하는 새로운 역병 ‘비만’ 에 대해 손자가 ‘나무’만 본다면 할아버지는 ‘숲’으로 논리를 더한다.
  공부만 잘한다고 인생이 꼭 성공으로 마무리 되는 것은 아니다. 책을 늘 가까이 한 사람은 넘어졌다가도 현명하게 일어설 수 있다. 꼭 사설이 아니더라도 활자가 우리에게 주는 힘은 매우 크다. 점점 아이들의 뇌는 수많은 미디어로 인해 팝콘브레인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스티븐잡스나 실리콘 밸리에 거주하는 IT전문가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가능한 한 스마트기기를 늦게 접하게 했다고 한다. 그들은 처음부터 인터넷이나 게임의 중독성을 예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듯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이 책《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에서 다룬 모든 것들이 자본주의와 맞물려 개인의 이윤만을 추구하려는 이기적인 발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내 아이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은 대단히 위험하다. 남의 아이 뿐만 아니라 내 아이도 병들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드라마와 현실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제대로 된 참교육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힘을 합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몸으로 겪어서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말고 우리가 새롭고 곧은길을 만들어 가면 어떨까? 참다운 교육의 길을 만들어가는 힘든 여정에 부딪혔을 때, 흔들리지 않고 탄탄한 길을 잘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친구《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를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민복숙 <중앙도서관 시민서평단>

안산신문  ansansm.co.kr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