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우 장편소설-제1회 안산의 책 독서감상작 전국공모전 서평 최우수상

 “언제 한번 날 좋을 때 보자.” 우리는 빈말을 얼마나 자주 해왔나? 상대와 진짜로 밥을 먹을 것도 아니면서 “언제 밥 한번 먹자.”고 하는 것처럼. 우리는 때로 지나가는 말로, 어쩌면 정말 할 말이 없어서 구체적인 날짜도, 기약도 이야기하지 않은 채 ‘언제 한번 보자’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모두 알고 있겠지. “진짜로 보고 싶어봐. 눈보라 치고 강둑이 범람하고 전쟁이 나도, 만나겠다고 목숨 걸고 달려가는 게 인간들이지.” 이건 내가 하는 말이 아니다. 이도우 작가의 최근작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 등장하는 명여 이모의 일갈이다.
  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의 주인공은 해원이다. 지방에서 홀로 상경한 30대 싱글 여성의 서울살이는 녹록치 않다. 미술학원 강사로 일하던 해원은 고단한 서울 생활을 잠시 접고 고향인 북현리로 내려와 명여 이모의 펜션지기가 되어 잠시 머물기로 한다. 고향에 돌아온 해원은 동네에서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동갑내기 은섭과 만난다. 학창시절 이후 한 번도 서로를 보지 못했던 둘의 해후는 뜻밖의 로맨스로 발전하고, 은섭의 책방 ‘굿나잇책방’을 중심으로 독서모임을 하는 북현리 사람들, 명여 이모의 펜션 가꾸기, 은섭네 큰아버지의 겨울 한정 아이스링크 운영 등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함께 펼쳐진다.
  “청춘들이여, 연애하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메시지를 꼽자면 단연 이것이 아닐까 싶다. 아마 백 명이 이 책을 읽었다면 백 명이 모두 각각 다른 메시지를 이 책으로부터 읽었으리라 생각될 정도로 저자는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이 책에 담았는데, 그 여러 이야기 중에서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두 주인공의 연애담이라고 할만하다. 
  해원은 어린 시절에, 예기치 못한 사건들을 겪은 이후 유난히 예민하고 염세적인 인물로 성장한다. 사람을 그리는 게 싫어 인물화를 그리지 않을 정도인 그녀는 자기 그림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당장 수중에 돈은 없고, 진로도 불투명하고 심지어 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꿈도 없이 지쳐버린 해원이 도망쳐 온 곳이 고향 북현리였다. 열심히 살아봤자 별거 없고,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는 것에도 질려버린 해원을 구원한 것은 ‘연애’였다. 아니 더 정확히는 북현리에서 ‘굿나잇책방’을 운영하는 다정하고 사려 깊은 은섭이었다고 해야겠다.
  은섭은 세상에 대한 환멸로 얼어붙은 해원의 가슴을 배려와 격려로 살금살금 녹이며 결국 해원의 연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은섭에게도 어린 시절에 겪은 상처가 있었다. 그 상처 위에서 자라 성인이 된 은섭은 주변으로부터 거부당하지 않기 위하여 큰 소리 내지 않고 나긋나긋하게 그러나 나그네처럼 떠돌 듯 생을 살아왔다. 그렇게 반쯤은 체념하듯, 침묵하며 살아온 은섭이 분명한 자기 자리를 깨닫고, 좀처럼 용기를 내지 못했던 그의 꿈을 시작하는 데에 기폭제가 된 것은 연인인 해원이었다.
  “모두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기뻐하거나 실망하거나,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나도 마찬가지.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까지 독립출판을 시작하는 게 현명한지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건 해야 하는 거고.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그걸 했을 때의 인생을 영영 모르게 될 테니까.”(254쪽-은섭의 책방 블로그 비공개 글 중에서)
  최근 티비에는 연애예능물이 넘쳐난다. 십년이나 지난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를 시작으로 번성해 온 연애예능은 이제 [선다방], [연애의 맛], [하트시그널], [썸바이벌1+1] 등 일주일 내내 안방극장을 점령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유튜브에서 핫한 개인방송 채널 중에는 커플방송도 여럿이다. 연애와 결혼을 포기한 삼포세대가 타자의 연애를 관람하면서 마치 내가 연애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은섭의 말처럼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그걸 했을 때의 인생을 영영 모르게’ 된다.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조차 하지 않게 된 우리 세대. 대부분의 이유는 이거다. 취업을 위해서 스펙을 늘려야 하고, 자격증을 공부해야 하거나 학자금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쉼 없이 해야 해서 시간도 없고 돈도 없다. 마치 북현리로 도망간 해원의 심정이 그러했듯, 열심히 살아봤자 앞날은 고만고만하고 내가 정말 무얼 하고 싶은지, 하고 싶은 게 있기나 한 건지 스스로가 의심스럽다. 시간도, 돈도 없는데 마음의 여유는 더더욱 없어서 내 한 몸이 버겁기만 한 이런 상황에서 연인? 가당치도 않다고 많은 청춘들이 냉소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의 상황이 이러하기 때문에 더욱더 ‘연애하라’고 권한다. 상황이 좋아질 미래를 기약하지 말고, 바로 오늘 아니, 지금, 우리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미루거나 숨기지 말라고 말한다. 날씨가 좋으면 보자는 그런 빈말이 오고 가는 관계가 아니라 태풍이 와도 만나자고 달려가는 절실한 관계를 만들어보자고, 저자는 해원과 은섭 커플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재회를 통하여 독자를 설득한다. ‘언젠가 할 거라고 하지 말고. 지금 바로 연애하세요. 따듯하게, 진솔하게.’
  물론 연애가 빚을 갚아준다거나, 좋은 직장을 소개해주는 건 아니다. 연애는 진로 상담도, 취업 알선도 아니다. 다만 연애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야만 하는 본질적이고 정서적인 소통의 온기를 되살려준다. 연애는 취업과 진로와 통장에 고정되어 있었던 시야를 마음과 정서와 관계로 돌아오게 한다. 이렇게 달라진 시야는 우리가 살면서 겪는 인간적인 갈등을 보다 넉넉하고 너그럽게 수용하고 해결하도록 만들어준다.
  이 작품의 결말에서 북현리를 떠나는 해원은 명여 이모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다. ‘이모가 했던 말을 생각해봤어. 날씨가 좋으면 만나자는 건 너무나 기약이 없다는 거. 좀 더 때가 되면, 상황이 좋아지면… 차일피일 미루게 되는 일들이 내게도 있었어. 이젠 조금 다르게 살 수 있을까?(책 401쪽)’ 이 질문을 독자 스스로에게 던져 보자. 우린 조금이라도 다르게 살고 싶어서 책을 읽지 않는가? 어제보다는 뭔가 다른, 나은 오늘이기를 바라고 책에서 그 힌트를 찾는다면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의 로맨스 속으로 뛰어들어보자. 두 청춘의 소박하고 담백한 연애사를 읽는 동안 당신의 마음에도 연애의 온도가 봄꽃처럼 피어오를 것이다.

정상미 <중앙도서관 시민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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