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동화작가>

산과 들이 고요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할 일 다 끝내고 고요 속에 누운 논밭을 보면 분분했던 마음들이 사라져버린다. 한 해의 끝자락이 가까워오면 절로 말이 없어짐을 느끼게 된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는 코로나19로 만남조차 줄어들어 예년보다 혼잣말을 많이 주고받는다.
얼마 전 지인이 큰 문학상을 받았다. 보통 100여 명 이상이 축하하는 큰 문학상 자리였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극소수 인원만 참가했다. 고요 속에 치러진 시상식, 지인의 수상소감이 걸작이었다.
“매주 금요일 저희 집은 묵언 수행의 날입니다. 여기에서도 지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재치와 따뜻한 웃음을 주는 소감이었다. 묵언 수행은 불교 용어이다. 묵언은 글자 그대로 말을 하지 않음이고, 수행은 부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불도를 닦는 것을 의미한다. 환언하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참선, 말을 함으로써 짓게 되는 죄업을 성찰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오래 전 템플스테이로 인연이 되어 매년 세모 즈음엔 절을 찾는다. 찾는 이유가 묵언 수행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냥 흉내만 내고 온다. 들어갈 때보다 나올 때 더 마음이 분분해져서 돌아오니 괴상한 묵언 수행이다.
올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말의 절제가 아닌가하는 마음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불필요한 말들이 쓰레기처럼 흘러넘친 한 해였다. 9월 하순, 한 의원의 입에서 갑자기 ‘묵언 수행’이란 말이 나와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한통속이지만 그런 아부성 발언까지 해야 하는지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발단은 야당의 한 의원이 추 장관에게 아들 병역 문제에 대해 이의제기를 했다. 시원한 답변이 나오지 않자, 야당의 다른 의원이 재차 물었다. 성의 없는 짧은 답변과 다음에 이어지는 것은 말없음표였다. 아예 대답을 하지 않는 장관이었다. 야당 의원은 결국 탄식을 쏟아내며 포기하고 말았다. “장관님, 장관님. 이제 대답도 안 하십니까? 하이고 참!” 야당 의원을 깔보는 모습이 역력했다. 국민까지 우습게 보는 격이었다. 이어서 여당의 한 의원이 질문을 하자, 장관은 “사법 정의와 비정상의 정상화.” 등 기다렸다는 듯 자세히 여유 있게 답변을 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열린민주당의 한 의원이 이런 추 장관에게 “일종의 묵언 수행이라 생각한다. 굉장히 좋은 품격 있는 대응이었다.”라며 치켜세웠다. 이쯤 되면 이건 묵언수행이 아니다. 짐승과 다를 바 없는 묵언수행이라고 해야 한다.  
어디 이뿐이랴. 현실과 동떨어진 거친 말이 예서제서 마구 넘쳐 나온다. 여당은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무작정 내달리고, 야당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뿐이다. 지난 번, 대통령이 13평 임대주택을 보며 “부부가 애 둘 키우고, 반려동물까지 키울 수 있다.”라고 한 말에 국민청원 게시판에 조롱에 찬 글이 올라왔다. ‘대통령 퇴임 후, 사저를 6평으로 제한해 달라’는 청원이었다. 나라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어디로 갈 것인지 두렵기까지 하다.
불교 교리에 십악업(十惡業)이라는 말이 있다. 몸, 입, 마음으로 짓는 악이 얼마나 큰 것인지 일깨워주고 있다. 그 중 입에 관한 악을 보면 거짓말을 하는 망어(妄語), 이간질의 말을 하는 양설(兩舌), 저주의 말을 퍼붓는 악구(惡口), 무의미한 잡설을 하는 기어(綺語)가 있다.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예이다. 본인 말만 하고 남의 말은 무시하는 정치인들이 너무 많다. 말을 앞세우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과시욕과 욕망으로 똘똘 뭉쳐있어 다른 사람을 생각지 않는다. 
묵언 수행은 쓸데없는 말을 삼가고, 자기 내면의 세계를 성찰하기 위함이다. 묵언 수행을 통해 좋은 에너지까지 축적할 수 있다고 한다. 이 해가 가기 전, 묵언 수행을 한 번쯤 시도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특히 쓰레기 말을 많이 내뱉고 있는 정치인들, 잠시라도 그 입을 다물고 자신을 돌아보는 묵언 수행을 했으면 한다. 세모가 가까워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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