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진세<작가>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리어 왔다. 유교 문화권이었던 우리나라의 문화는 유교 사상이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유교에서는 예학이라는 학문이 있어 신.의·예를 지키는 것이 군자가 지켜야 할 마땅한 도리라고 배워왔다. 그중에 나는 예법에 대하여 관심이 많다.
 조선 시대에는 성리학을 기본으로 하여 관(冠)·혼(婚)·상(喪)·제(祭) 사례(四禮)에 관한 “주자가례(朱子家禮)”를 만들어 백성은 물론 궁궐에서도 지키도록 하였다. 대한민국이 건국한 뒤, 박정희 대통령은 건전 가정의례 준칙을 만들어 배포하여 국민에게 관혼상제를 조선 시대보다 훨씬 간편하게 치르도록 하였다. 그 뒤에 많이 간편해지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 사회는 번잡한 예법이 많이 남아 있어 현실에 맞도록 수정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우리의 예법만이 그대로 남아서 산업사회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전통을 지키며 조상을 섬기는 것이 현대사회에 맞지 않으므로 이제는 변해야 한다고 공감하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다. 나는 우리의 예법 중 특히 명절 차례상과 제사의 예법이 아직도 시대와 맞지 않는 점이 많이 있다.
 설은 한 해의 시작을 알리고, 추석은 농경사회이었던 시대에 힘들게 농사를 지어 수확한 농산물을 고마운 천신과 조상에게 바치는 예절이다. 그 농산물은 하늘신과 땅 신과 곡신신과 조상신이 도와주어서 열매를 맺었다고 보았으므로 감사를 표했다. 서양말로 하면 추수감사절이다. 하지만 요즈음 농경사회도 아니고 대가족 사회도 아니다. 지금은 국민의 10%만이 농업에 종사한다. 그러니 직접 농사지은 음식으로 음식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모두 객지에 나가서 각자의 일을 하기에 모여서 음식을 만들기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요즈음 추석 차례 음식 준비는 예전하고는 사뭇 다르다. 슈퍼마켓에서 송편과 각종 전은 물론 나물 종류 등등을 그냥 사서 차례상에 올린다. 예전에 만들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 많이 단축하였다. 심지어는 제사상을 통째로 주문하여 그대로 차려 놓고 지내는 가정도 늘고 있다. 그나마 직접 만들기로 마음먹고 시장에 가면은 우리 고유의 농산물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싸고 질 좋은 ‘중국산 야채며 과일’, ‘노르웨이산 해산물’, 동해안에서 씨가 사라진 ‘동태는 러시아산’, 질 좋고 싼 가격의 ‘수입품 소고기’ 등등……. 신토불이 음식 재료를 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 된 지 오래다.
 몇 해 전 TV 뉴-스를 보던 중 눈을 의심할 광경을 보았다. 화면에 귀성객들의 모습을 비춰 주면서 휴게소 쓰레기통에 부모님께서 정성껏 챙겨 주신 차례 음식이 통째로 버려진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순간 나는 충격을 받아서 온통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혼란을 수습하고 생각하여 보았다. 시어머니께서 쌓아 주신 정성 어린 보따리에는 송편이며, 각종 전, 약과 사탕 등등이 들어 있을 것이다. 모두 열량이 높아서 젊은 사람들이 꺼리는 음식들이다. 예전엔 약과는 서로 먹겠다고 실랑이를 벌여야 겨우 얻어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순 이 넘은 나이에 내가 먹으려니 맛이 없어 못 먹을 정도다. 튀각에 조청을 바른 다음 튀밥을 묻혀 먹던 산자라는 맛난 음식도 이제는 먹고 싶은 음식의 대상에서 제외된 지 오래다. 그렇다면 나도 먹지 못하거나 먹기 싫은 음식을 조상님께 올렸다는 말인가?
 나는 그동안 ‘모순덩어리’이며 그야말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 없이 오직 나의 의무감과 체면으로 차례상을 올리지 않았을까. 옛날 분이라서 옛날 음식만 좋아할 거라는 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차례상을 올리지 않았는지, 예전 분들이라고 해서 나도 먹지 않은 음식을 올려야만 하였는지 반성을 해본다. 옛날 조상들도 요즈음 음식을 드시고 싶지는 않았을까를 한 번이라도 생각하여 보지 않은 내가 부끄러워졌다.
 나는 그동안 차례상을 차릴 때도 좌포우혜(左脯右醯), 어동육서(魚東肉西),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二枾) 등 예법에만 사로잡혀서 형식에만 치우쳤다. 정작 조상님들이 무슨 음식을 드시고 싶어 하실지 생각하여 보지 않은 나 자신이 한심하였다. 나는 형식에만 치우쳐서 “조상의 은덕을 잊지 않고 조상을 기린다”라는 본뜻을 망각하지 않았는가를 스스로 반성하였다. 내 잘못을 인정하고서는 곧바로 실천에 옮기는 것이 군자가 하여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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