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동화작가>

동명이인(同名異人), 같은 이름을 가진 서로 다른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이름이 대부분 석 자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동명이인이 많다. 김영숙이란 이름이 전국에 40,335명에 이른 적도 있었다. 이 동명이인 때문에 웃지 못할 촌극도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같은 건물에 사는 동명이인에게 건강보험료가 잘못 배달되는 게 많다. 처방전 실수도 종종 생겨 잘 살펴보아야 한다. 택배 배달 시 동명이인과 운송장 번호가 바뀌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난 5월엔 동명이인에게 무려 20년 동안 재산세를 잘못 부과한 지자체의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적발되었다. 라임자산운용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재판에서 이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동명이인이 증인으로 출석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결국, 그날 재판은 중단되고 말았다. 이와 비슷한 아니, 더 황당한 사건이 우리 안산에서 벌어졌다. 한 지역에서 똑같은 제호의 신문이 어느 날 발행되다니? 그것도 2년씩이나? 한마디로 경악스럽고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신문의 사명은 정론직필이다. 지역의 생생한 정보와 지식 제공은 물론 때로는 지역사회의 잘잘못을 지적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등 지역 발전을 위해서 선도자와 같은 구실을 해야 한다. 그런 막중한 사명을 가진 언론사가 이런 무책임한 일을 하다니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다.

지난 2년간 ‘안산저널’로 인터넷과 활자 신문을 발행했던 지역 언론사가 어느 날 갑자기 ‘안산신문’으로 둔갑, 시민들을 혼란의 늪 속에 빠뜨려버렸다. 두 개의 안산신문이 발행되는 전대미문의 일이 안산에서 벌어지게 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일어난 부끄럽고 민망한 사태였다. 제호도 처음엔 고딕체였다가 후엔 본지와 똑같은 폰트 모양, 글자 간격까지 거의 흡사하여 더욱더 시민들을 경악스럽게 만들었다. 시민들의 문의와 항의가 신문사로 빗발쳤다. 심지어 안산에 사는 게 창피할 정도라는 시민도 있었다. 그 모든 게 본지를 아껴주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심지어 시정의 담당자와 국회의원, 시의회 의원들의 안일과 방관을 지적하는 시민들도 부지기수였다. 큰 힘이 되어주었다. 고마운 시민이었다.

창간 32년의 역사를 가진 언론사로서 명성과 신뢰가 훼손된 것은 물론이다. 불의를 지나칠 수 없었다. 싸움은 외로웠다. 그러나 진실은 이기는 법, 지난 5월 27일, 수원고등법원으로부터 판결문이 도착했다. 종지부를 찍는 날이었다. 그동안 안산신문을 지키기 위한 땀과 노력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의 마음 및 육체적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도착한 판결문을 읽고 또 읽었다. 판결문을 덮으면서 문득 ‘용비어천가’가 떠올랐다. 알다시피 용비어천가는 조선 초기 세종 임금 때 발간된 악장·서사시이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뒤, 훈민정음을 시험하기 위해 펴낸 책이다. 용비어천가 중 제2장의 구절이 안산신문에 오버랩 되어 지면에 자리를 잡는 것이었다.

「불·휘기·픈남·ᄀᆞᆫᄇᆞᄅᆞ·매아·니:뮐·ᄊᆡ｡곶:됴·코여·름·하ᄂᆞ·니(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려 꽃이 좋아지고 열매가 많아지니)

:ᄉᆡ·미기·픈·므·른·ᄀᆞᄆᆞ·래아·니그·츨·ᄊᆡ｡:내·히이·러바·ᄅᆞ·래·가ᄂᆞ·니(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아니 그쳐서, 냇물이 되어 바다에 가노니.)」

안산신문은 뿌리 깊은 나무이고 샘이 깊은 물이다. 바람에 쓰러지지 않는다.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본지는 창간 이후 한 번도 거른 적 없이 신문을 발행해 왔다. 안산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약한 자를 위해 앞장서온 소중한 신문이다. 안산의 발전에도 큰 역할을 한 신문이다. 안산상록대상 수상자 발굴로 안산의 위상을 높여왔다. 부설 안산아카데미의 수료생들은 안산의 발전에 초석 역할을 하고 있다. 때로는 콘서트 각종 행사로 삶에 지친 시민들의 마음을 치유해주었다. 그런 소중한 신문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을 겪으며 안산신문은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통 큰 사람처럼 다시 묵묵히 제 갈 길을 갈 것이다. 과거의 일에 연연하지 않고, 뿌리 깊은 나무처럼 샘이 깊은 물처럼 나아갈 것이다. 비 오고 난 뒤의 땅이 더 단단해지는 법이다. 안산신문의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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