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동화작가>

연일 폭염과 열대야로 잠 설치는 밤이 허다하다. 3년 전, 그 지긋지긋했던 찜통 무더위가 떠오를 정도이다. 한반도가 마치 푹푹 찌는 가마솥에 들어 와있는 것 같은 여름이었다. 얼마나 무더웠으면 ‘가마솥 무더위’라는 말까지 방송에서 썼을까? 뉴스 시간이 되면, 제일 먼저 일기예보가 나올 정도였다. 가마솥 무더위로 사상자 수도 굉장했다.
올여름도 그에 못지않을 것 같다. 코로나19의 점령군 같은 기세와 그림자처럼 떨어지지 않는 마스크는 폭염과 함께 일상을 더욱 지치게 만들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벌써 많은 나라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가 사상 초유의 물폭탄을 맞고, 북미는 열폭탄에 만신창이가 된 지역이 수두룩하다. 사상자 수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7월에 늦장마가 시작된 것은 1982년 이후 39년 만이다. 기상청은 이번 주부터 한층 더 강한 폭염이 몰려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폭염이 이어지면 그 무서운 전력대란도 함께 뒤따른다. 이미 우리는 그 대란을 경험했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지난 18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무더위가 이어진 지난주(12∼16일) 전력공급 예비전력이 10% 아래로 떨어졌다고 한다. 작년보다 한 달 이상 빨랐다고 한다.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보통 예비전력이 10% 이상이어야 발전기 고장 등 돌발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안정수준이라고 한다. 10%가 마지노선인 셈이다.
10년 전 일이다. 본지에 전력 대란에 관한 칼럼을 2011년 9월 21일 게재한 적이 있다. 그 당시의 전력대란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2011년 9월 15일 오후 3시, 전국 곳곳에서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일상적인 정전이려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역별 순환정전? 낯선 단어와 함께 긴급방송이 연이어 터졌다. 엘리베이터 안에 갇혀 공포에 떨던 시민들이 119 구조대에 의해 구조되고, 갑작스레 꺼진 신호등으로 인해 횡단보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양식장에서는 수많은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일부 병원의 업무도 중단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안산의 대표 산업단지인 반월산업단지도 정전 피해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팔곡동 도금단지를 비롯, 많은 공장에서 생산 중이던 제품들을 모두 폐기 처분해야 하는 피해까지 입었다. 당시의 전력대란 사태로 관계 장관을 비롯해 책임자들이 사퇴를 했다. 그때도 정부 부처 간의 서로 네 탓 떠넘기로 국민의 공분을 샀다.
예비전력이 0이 되면, 대한민국 전체가 정전 속에 파묻힌다. 공장과 기업, 학교와 은행 등 국가의 모든 시스템이 마비되는 천재지변에 버금가는 혼란이 발생한다. 무서운 일이다.
정부 관계자는 “올여름은 전력수급 비상단계 1, 2단계까지 갈 수 있으며 폭염 등으로 인해 단계가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는 만큼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산업부 관계자도 “더위가 누적되는 21∼22일 전력수요가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오를 수 있으며, 이번 주에 정비를 마친 원전 1기를 추가로 가동하는 등 충분한 공급력과 예비자원을 확보하고 철저히 대비할 계획.”이라고는 했지만 믿음이 가지 않는다. 탈원전을 여전히 고집하는 이 정부의 말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 이들이 자랑하는 태양광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주문하고 싶은 것은 위기대응 매뉴얼을 꼼꼼하게 다시 손을 보고, 순환정전 발생 시, 사전예고 시스템을 마련하고 신호등과 엘리베이터 등 국민 안전과 직결된 시설물엔 예비전원 공급체계를 신속하게 갖추어야 한다.
앞으로 남은 여름이 걱정이다. 코로나19에 지친 나라에 전력대란이 오지 않기를 빌 뿐이다. 기적처럼 폭염이 피해가길 바랄 뿐이다. 코로나 방역도 네 편, 내 편에 따라서 정반대의 잣대를 들이대는 정부이다. 반대편의 집회에는 살인자라는 막말로 비수를 꽂더니 내 편 시위에는 아주 관대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전력대란이 일어나면 이 정부는 전기를 평소 아껴쓰지 않아 일어났다며 국민 탓으로 돌릴까 심히 우려된다. 이래저래 체감 더위지수가 이미 한계점에 다다른 것 같다. 이번 여름, 국민의 삶에 피해가 오지 않도록 정부 부처는 만전을 기해야 한다.

안산신문  ansansm.co.kr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