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동화작가>

대통령선거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터미널이나 공원 등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서는 각 당의 후보 연설이 쉴 틈이 없다. 곳곳마다 눈에 잘 띄는 곳에는 여지없이 후보들의 현수막이 출렁거린다. 가로수마저 현수막 공해에 시달리고 있다. 올해는 가로수들이 때에 맞추어 새순을 틔울지 의문(?)스럽다.
날이 흐를수록 선거판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선거 양상이 정책 쪽으로 가질 않고 역주행을 하는 느낌이다. 막가파식으로 상대방을 향한 비방이 브레이크 없는 열차가 달리는 형국이다. 후보자들의 발차기와 어퍼컷 퍼포먼스를 보면 웃음이 절로 새어 나온다. ‘참 별 걸 다하는구나. 하긴 표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인들 못 하랴….’
우리의 선거판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가? 국민에게 희망과 꿈을 선물하는 선거판이 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선거를 책임지고 있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비전은 ‘더 좋은 정치를 지향하고 국민과 함께하며,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다. 비전처럼 국민과 함께하는 대선판으로 갈지 그간 행적을 보면 심히 의문스럽다. 더욱이 현재 국내외적으로 수많은 사건이 터지고 있다. 북한은 또 미사일을 쏘아댔다. 2022년 들어 무려 8번이나 미사일을 쏴댔다. 청와대는 부랴부랴 법석을 떨며 회의를 열었지만, 또 유감발표로 끝나고 말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바람 앞 등불 같은 우크라이나를 위해 서방 세계는 힘을 못 쓰고 있다. 전쟁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우크라이나의 참상에 유력 대선 후보의 입이 방정을 떨고 말았다. 우크라이나를 향해 ‘대통령은 정치 초보, 러시아 침공은 우크라이나 탓’이라는 비하성 말을 하고 말았다. 이 표현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네티즌들까지 비난을 하고 나섰다. 후보는 곧바로 사과했지만, 뒷맛이 씁쓸하기 그지없다. 내로남불이다.
2021년 4월, 뉴욕타임스가 우리나라의 재보궐 선거에서 야당이 압승한 기사를 실었다. 그 기사 외에 정치인들의 전매특허인 ‘내로남불'(Naeronambul)’이란 유행어까지 언급했다. 그것도 아주 자세하게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이라고까지 소개를 했다. 당시 얼마나 망신스러웠는지 모른다. 지난 2월 13일, 영국의 선데이타임스가 우리나라의 선거판을 보도해서 또 국제적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유력후보의 부인들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그간 제기된 의혹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북한의 안보 위협, 부동산 문제 등 산적한 과제들을 제치고 대선 유력후보들과 그 부인들은 스캔들과 속임수의 홍수에 허우적대고 있다고 꼬집었다. 어쩌다 우리의 대선후보들이 글로벌 대선후보들이 되었는지, 이렇게까지 이끌어온 정치판이 참으로 역겨울 뿐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함에도 대선후보들의 정책 토론은 볼 수 없고, 후보자, 배우자, 가족을 겨냥한 개인적 공격으로 치닫고 있다. 막퍼주기식 헛된 공약도 자고 나면 경쟁식으로 쏟아지고 있다. 이 와중에 대통령의 느닷없는 친원전 발언엔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머리를 맞은 느낌까지 든다. 임기 내내 탈원전을 초지일관 부르짖더니 갑자기 친원전으로 돌아서다니…. 대통령은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에 대해서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단계적 정상 가동을 할 수 있도록 점검해 달라”고 주문했다. 내로남불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탈원전을 고수하는 동안 우리나라의 세계적 원전 기업은 도산하고 말았다. 그 속셈이 무엇인지 뻔하다.
대선판을 보면서 우리 현실의 가장 큰 문제는 이념의 갈등을 봉합하는 것이다. 대선 후 누가 정권을 잡아도 최우선과제가 되어야 한다. 어쩌다 대한민국이 이 지경까지 왔는가? 인터넷상의 댓글을 보면 상대방을 향한 욕설이 전횡하고, 광기 어린 분노와 끔찍한 언어들이 넘치고 있다.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국민에게 희망과 꿈을 주고 배려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그런 정치 시대가 와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대선이다. 대선 후보나 국민이나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현수막에 꽁꽁 묶인 가로수가 현수막을 내려다보며 웃는다. “우리는 시원한 그늘도 내어주고, 새들의 둥지도 내어주고, 아름다운 단풍잎과 겨울엔 찬 바람까지 막아주는데 당신들은 입으로만, 입으로만….” 나무들 보기마저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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