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동화작가>

2020년 9월 21일, 소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해양수산부의 한 공무원이 실종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공무원은 22일 오후 북한 등산곶 인근 해역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시신은 불태워져 사라졌다. 북한의 비인권적인 만행 중 최고의 만행이었다. 해경과 국방부는 군 당국의 첩보 내용과 사망자의 채무 관계, 당시 해상 표류 예측 분석 등을 토대로 자진 월북으로 결론을 냈다. 사건 발생 7일 만에 속전속결로 이루어진 발표였다.
가족들의 반발은 컸다. 절대 자진 월북이 아니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당시 함께 승선했던 동료들의 진술도 자진 월북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했다. 차가운 바닷물과 꼭 입어야만 하는 방수복, 실종 장소에서 북한 해역까지 직선거리로만 20㎞가 넘는 거리를 헤엄칠 수 없음 등을 들어 의구심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진술은 무시되고 말았다. 23일 문 대통령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제75차 유엔총회 온라인 기조연설을 하고 종전선언을 강조했다. 그 후 정부는 이 사건에 관여한 해경 간부들을 잇따라 고속 승진을 시켰다. 희한한 승진이었다.
사망자 가족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서울행정법원은 작년 11월, 청와대와 해경 등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군사기밀을 제외한 고인의 사망 경위 등 일부 정보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한 판결이었다. ‘사람이 먼저다’를 줄기차게 외치던 대통령과 청와대는 항소를 했다.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지켜야 하는 대통령이 항소를 하다니? 개와 소가 웃을 일이었다. 결국, 이 사건 관련 자료는 문 대통령의 임기 만료와 함께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돼 15년간 열지 못하도록 대못을 쾅쾅 박았다. 대못을 빼기 위해서는 국회 재적 의원 3분의2 이상의 동의나, 관할 고등법원장이 발부한 영장이 있어야 한다. 도대체 청와대는 무엇을 감추고 싶었을까? 무엇이 두려웠을까? 문 정권의 치부가 담긴 판도라의 상자일까? 하늘이 깨져도 민주당은 이 기록물 열람 동의를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도 북한 피살 공무원 TF팀을 구성, 진실을 밝히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20년 9월 25일, 북한이 보낸 통지문에 담긴 사과를 두고 민주당은 진솔한 사과라며 극찬에 가까운 평까지 했다. 김정은을 계몽군주라고까지 추켜세운 전직 장관도 있었다. 참으로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종전 때문에 눈이 멀어도 단단히 먼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세월이 흘렀다. 정권이 바뀌고 이 사건이 다시 수면 밖으로 떠올랐다. 국방부와 해경이 2년 전의 입장을 번복, 정반대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해경이 “2년 전 발표는 수사 진행 과정에서 중간보고를 한 것이며, 이후 월북 경위에 대해 다각도로 수사해 보니 월북으로 인정할 만한 증거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시쳇말로 이게 말인지 방구인지, 정말 이게 나라다운 나라인가? 당연히 국민의 여론은 들끓고 여당과 야당의 싸움이 극에 치닫게 되었다. 여당은 내로남불을 넘어 북로남불이라고 맹공을 퍼붓고, 민주당은 신색깔론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경제와 민생은 돌보지 않고 정략적인 문제에만 골몰하는 국회, 이게 대한민국 국회의 부끄러운 얼굴이다. 고물가와 고금리, 고환율과 저성장의 총체적 복합위기 앞에서 난국을 극복해야 할 입법부는 후반기 원 구성도 못하고 있다. 이미 의장단과 상임위원장 등 원 구성을 마무리하고 의정활동에 들어갔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내각이 아직도 미완성이다. 저들의 사욕만 챙기느라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고 있는 걸로 보아야 한다. 국회 공백은 한 달 가까이 되고,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법사위원장 자리로 한심한 작태만 연출하고 있다.
개점휴업인 국회, 차라리 문을 닫고 함량 미달이라는 고해성사를 해도 국민의 화는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국회엔 국회의원다운 의원은 없고, 국개의원과 국해의원들로 들끓고 있다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2020년 9월 21일 발생한 서해 공무원 사망 사건의 실체는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TF팀 구성해봤자 믿음이 가지 않는다. 말로만 밝힌다 변죽만 올리지 말고, 판도라의 상자든 아니든 하루 속히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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