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아<수필가>

코로나19 이후 다중이용시설 출입구에 열화상 카메라가 설치되었다. 화면 속에는 스치는 사람마다 체온 확인이 가능하다. 최근 대학병원에 갔다가 입구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를 보았다. 큰 화면 속으로 사람들이 무심하게 지나간다. 나도 그들 속에 있다.
 한 컷의 사진이라면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일행처럼 보일 것이다. 화면 속의 사람들은 곧 각자의 길로 사라진다. 그들 중 누가 나를 알겠는가. 나는 어떤 이를 알고 있을까. 아는 사람이란 표현은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이다. 그렇다면 친한 사람이라고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어머니는 파킨슨병으로 오랜 기간 약물치료를 했다. 지금은 파킨슨 증세와 치매 증세가 더 심해졌다. 치매는 사실 특정한 질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지 기능에 문제가 생겨서 일상생활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상태다. 누리다, 이 단어의 뜻은 ‵생활 속에서 마음껏 즐기거나 맛보다′이다. 
 ‘누리다’의 사전적 의미를 생각하면서 나의 일상을 관찰했다. 설거지할 때 왼손과 오른손의 밸런스는 매우 중요하다. 왼손 엄지는 밥그릇 안에 넣고 감싸 안듯 손바닥으로 밥그릇 아래를 받쳐 든다. 세정제를 묻힌 수세미를 오른손 엄지로 그릇 안쪽에 고정하여 둘레를 따라 왼손과 오른손을 박자에 맞춰 돌려 씻는다. 헹구는 동안 그릇에 떨어지는 물소리와 숟가락, 젓가락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소리다. 나는 매일 쌓이는 설거지를  귀찮아했고, 내 자유 시간을 빼앗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설거지하는 내 모습을 관찰하면서 처음 자각 한 사실이 있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온전히 집중했을 때 알 수 있는 일이다. 어느 순간 일상의 소소한 일에 조금 더 정성을 들여 바라본다. 일상을 마주하는 내 나름의 감사 표시다.
 어머니는 대화 도중 갑자기 말을 멈춘다. 그런데 어떤 말을 하려고 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고 한다. 때로는 식사 도중 이게 무슨 반찬이냐고 묻는다. 대답을 해 주어도 이미 질문한 사실을 잊어버린 채 질문을 반복한다. 자식들과 전화를 하기 시작하면 끊임없이 다시 건다. 긴 통화를 하고 끊어도 전화 건 사실을 바로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어머니와 이야기를 해보려 해도, 다른 사람의 말을 못 알아들으니 자기주장만 한다. 쉽게 화를 내거나 의심을 하고, 우울해 보이는 등 성격의 변화도 심하다.
 어머니는 20여 년 전 치매로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모셨던 기억이 선명한가 보다. 시어머니에게 식사를 챙겨드려야 해서 집에 가야 한단다. 이사 온 지 오래된 현재의 집은 기억에 없고 예전에 살던 집 이야기만 한다. 어제도 시어머니에게 식사를 챙겨 드렸다며, 실제로 눈앞에서 일어난 것처럼 말한다. 망상이라고 해야 할지, 헛것을 본다고 해야 할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현재 어머니의 가장 큰 문제는 당신이 식사했는지 안 했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가끔 아침식사를 두 번 요청하실 때가 있다. 정말 배가 고프다고 하시기에 다시 상을 봐 드렸다. 그런데 입맛이 없다고 한다. 물론 어머니는 이미 식사하셨지만 배부르다는 기억은 없다. 
 기억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지금 상황에서 내가 기억을 잃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나와 어머니는 서류상의 모녀 관계로만 남을 것이다. 기억이 없는 사람들이 서로 마주한다는 건 아무 관계도 될 수 없다. 누군가 한 사람은 기억하고 있어야 관계가 지속되지 않겠는가. 사진을 보며 어머니와 추억을 이야기한다. 남은 기억이 있다면 그 조각만이라도 유지하고 싶다. 일상이 기억되고 또 새로운 추억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소중하니까 말이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병중에 있고 우리 형제에게 남겨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당신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자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마음이 아픈 것은 현재 삶의 무게가 과거의 사랑과 도타운 정을 덮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어머니가 존중받고 있고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떤 이는 어머니의 상태가 중증이라 요양병원에 모셔야 한다고 조언한다. 왜 굳이 온 가족이 고생하고 있느냐고…. 혹시 다른 이들의 인정을 바라는 것이냐고. 알아주기를 바라서가 아니다. 나의 어머니니까. 돌볼 수 있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이다.  
 열화상 카메라에 스치는 사람들 온도가 컴퓨터 모니터에 표시된다. 관계에도 온도가 있을 것이다. 뜨겁거나, 차갑거나, 미지근한. 부모님과의 친밀한 관계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식어갈 것이다. 부모는 다양한 모습으로 늙어간다. 나 또한 그러하리라.  
 오늘 하루도 어머니와 함께 소소한 일상 속에서 체감하는 온도의 항상성을 꿈꾼다.
 또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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