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부부상담사>

수년 전부터 농사를 짓고 있다. 우습게도 밭에 드나드는 일이 쉽지 않다. 진입로가 좁고 길어서가 아니라 다름 아닌 찔레 때문이다.
밭으로 가는 진입로 왼쪽에는 농수로가 있는데 덮개가 없다. 그래서 한눈을 팔면 자동차의 바퀴가 농수로에 빠져 버릴 수 있다. 오른쪽이 편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여기에도 만만치 않은 장애물이 있다. 바로 옆이 철길이라 그쪽으로 사람이 왕래할 수 없게 완충 녹지를 조성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곳은 비탈이 졌고 흙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막으려고 진입로와 접하는 곳에 턱을 만들어 놓았다. 턱은 시멘트로 되어 있고 꽤 높다. 어쩌다 조금이라도 잘 못 하게 되면 차가 긁히거나 찌그러진다.
그나마 엉금엉금 기어서 가면 양쪽에 도사린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우리에게 가장 큰 방해물은 무엇보다도 찔레다. 지금쯤 완충 녹지에 찔레가 잎사귀를 틔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농사일이 가장 바빠지는 시기에 꽃을 피우고 진입로에 왕성한 가지를 드리운다. 가만히 두면 찔레가 길의 절반을 가로막아 버린다.
내가 찔레를 알게 된 것은 노래를 통해서였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입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난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이런 가사였다. 이 노래 속 찔레의 모습은 아련하고 가냘프고 그 곁의 사람은 무척 슬프다.
처음으로 찔레를 보고 만져본 것은 우리 밭으로 가는 진입로에서였다. 현실의 찔레는 가시가 많고 억세었고 그 곁의 나는 무척 화가 났다. 일 년에 두 번은 낫이나 예초기를 들이대야 했다.
어느 날 친구와 문경 세제를 걷고 있었다. 맑은 물소리에 끌려 고개를 돌렸더니 바위투성이 냇가에 하얀 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고 싶을 만큼 예쁜 꽃이었다. 바위에 걸터앉아 그 꽃을 들여다본 나는 깜짝 놀랐다. 찔레였기 때문이었다. 내 눈이 잘못되었나 싶어 네이버 꽃 검색까지 해 보았다. 찔레가 틀림없었다.
냇물에 발을 씻으며 나는 탄식을 했다. 산에서 흘러나오는 냇물, 졸졸 물소리, 검은 너럭바위, 바람과 새가 드나드는 그곳에서 찔레는 그야말로 화룡점정이었다. 만약 찔레를 지워 버린다면 그 풍경은 ‘앙꼬 없는 찐빵’과 다름없었다. 그곳의 찔레는 그렇게 귀했다. 그래서 꽃도 그렇게 눈부시게 풍성하였다.
같은 찔레이건만 여름이 시작될 무렵부터 나와 적이 되는 것을 생각했다. 수년 동안 반복해서 모가지가 댕강댕강 잘리는 찔레. 있어야 할 곳을 잘못 타고 난 찔레. 같은 꽃 다른 느낌.
사람도 그럴 것이다.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사람도 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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