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부부상담사>

 지난 주말, 내내 포근하더니 갑자기 춥고 비가 왔다. 하필이면 친구 아들이 결혼하는 날이었다. 남편과 나는 그 친구와 대학 동문이라 함께 집을 나섰다. 나는 예식장 가까운 곳에서 먼저 내렸다. 주차장에서 예식장까지 멀지 않았으나 옷을 얇게 입어 추웠기 때문이었다. 예식장으로 뛰는 그 짧은 사이에 비를 맞았다. 우산은 하나밖에 없었고 차를 대고 오는 남편이 써야 했다.
 남편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기계에 넣어 비닐을 씌웠다. 먼저 도착한 동문 여럿이 웨딩홀 앞에 모여 있다가 우리를 반겨 주었다. 남편이 부조금을 전하려고 이동하는 순간 멀리 있던 한 후배가 나무라듯 내게 소리쳤다. 내가 과장하는 게 아니라 진짜 소리쳤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곳 그것도 거리가 좀 떨어진 데서 외쳤는데 그의 말이 정확히 내 귀에 꽂힌 걸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형님 체면도 있지, 우산을 형님이 드시게 해요?”
 순간, 어 이게 무슨 말이야? 그럼 우산을 누가 들어야 하지? 내가 들어야 했나? 머리를 2배속으로 굴려보았으나 그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에게 다가가 묻고 싶었다. “그럼 누가 들어야 해?” 그러나 내가 묻기도 전에 그는 나를 또 한 번 나무랐다. 아니 꾸짖었다.
“원장님이 우산 들고 다니셔야 해요?”
아주 오래전에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고깃집에 있었다. 우리 가족의 고기 굽는 담당은 언제나 남편이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고정된 역할이었다. 남편이 이렇게 고기 굽기에 코가 꿰인 건 그가 자초한 일이다. 언제나 음식에 진심인 남편은 고기 한 점 허투루 버리지 않겠다는 마음이 강했다. 자꾸 뒤적여 육즙이 새게 하거나 고기를 태우는 꼴을 보지 않으려 직접 가위와 집게를 쥐는 것이다. 내가 고기를 구우려고 해도 만류하는 적이 많아, 나는 이제 고기 구울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우리 네 식구가 모인 그날도 남편이 고기를 굽고 있었다. 나는 남편이 구워주는 고기를 거저 먹지 않는다. 고기를 쌈에 싸서 그의 입으로 부지런히 나른다. 식당 아주머니에게는 남편은 고기만 굽고 나는 옆에서 날름날름 먹기만 하는 걸로 보였던 모양이다. 불판을 갈아 주러 온 아주머니가 무심을 가장하고 한마디 했다.
“사장님도 드세요”
남편을 위하는 듯 보였지만 실은 나를 비난하는 거였다. 그 정도 눈치쯤은 나도 장착하고 다닌다.
모르면서 입을 놀린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치우친 견해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남편보다 내가 더 잃어버릴 체면이 많고(사회적 지위) 내가 우산을 들었다고 가정하자. 후배가 남편을 향해 ‘형수님 체면이 있지, 우산을 들게 해요?’라고 나무라지는 않을 것이다. 식당 아주머니도 내가 고기를 구우며 먹지 않아도 “사모님도 드세요”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험하고 폼나지 않고 체면 깎이는 일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의 몫이다. 이게 훨씬 자연스럽고 보기에 쉽다. 불편하지 않은 것이다.
그들에게 화나지는 않았다. 그들의 머릿속 풍경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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