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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니의인생상담]아프니까 드는 생각
  • 안산신문
  • 승인 2023.07.2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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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니<부부상담사>

나도 더위를 먹었을까, 평소에 하지 않던 짓을 하고 말았다. 운동을 마치고 허겁지겁 냉탕에 몸을 담갔다. 찬물로는 샤워도 하지 않는 내가 왜 그랬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냉탕에 2분 있다가 온탕으로 옮겨 2분 머무는 짓을 두 번 반복했다. 느닷없는 신체 환경의 변화를 내 몸이 그렇게 빨리 흡수할 줄 몰랐다. 수건으로 몸을 닦는데 벌써 목이 잠겨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까짓 목소리쯤이야. 그때까지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조금 피곤해지면 목이 쉬었다 풀리곤 하는 일이 자주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파에 잠깐 누운다는 게 두 시간을 잤다. 눈을 떴는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묵직한 통증이 머리를 누르고 온몸에 열이 펄펄 끓고 있었다. 그리고 떼로 몰려든 사람들에게 흠씬 얻어맞은 것처럼 온몸이 욱신거렸다. (어릴 적 부모님에게 맞은 적은 있으나 몸이 욱신거릴 정도로 맞은 것은 아닐 텐데 달리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외출한 아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남편은 일터에서 바쁠 시간이었다. 문득 혼자 사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나이가 많든 적든 혼자 살면서 마땅히 도움을 구할 데가 없는 사람들 말이다. 조금 폐를 끼치겠다고 마음먹고 전화를 돌리면 아무 때라도 달려와 줄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나도 아프니까 이렇듯 외로움에 사무치는데.
약장까지 무릎으로 기어가 타이레놀을 찾았다. 손으로 눌러 약을 꺼내려 해도 단단한 플라스틱 껍질에 쌓인 약은 좀체 빠져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열에 들떠 기진맥진한 사람들이 어떻게 약을 꺼내라고 하는 건지 화가 났다. 약에 이물질을 주입할 수 없게 고안된 포장이라는 건 안다. 그러나 노인처럼 악력이 약한 사람들은 전혀 배려하지 않은 포장이었다. 타이레놀 포장을 뜯지 못한 일은 내게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찌어찌 문구용 칼로 간신히 약을 꺼내 두 알 먹었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와 약을 건넸다. 그가 준 약이 한 주먹이나 되었다. 혼미한 정신 속에서도 약이 좀 많다는 분명한 자각이 있었다. 더구나 조금 전 타이레놀까지 두 알 먹었던 바였다. 그래도 망설이지 않고 약을 먹었다. 남편은 속이 아플 때 먹는 또 다른 약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극심한 통증에 나는 잠에서 깼다. 명치 부분이 불에 덴 듯 타고 있었다. 속 아플 때 먹으라는 약을 두 알 먹었다. 위약 효과라도 조금 있었으면 오죽 좋았을까. 내게 그 약은 속 아플 때 먹으면 더욱 아프게 되는 약일 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빈 속에 들이부은 약을 헤아리려면 손가락 모두를 동원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오래전 담석 수술 직전 방바닥을 떼굴떼굴 구를 때보다 훨씬 더 아팠다. 물론 지나간 통증이 목전의 통증보다 크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기억의 왜곡을 고려해도 정말로 더 아팠다.
극한의 통증은 결국 모든 것을 게워내면서 끝이 났다. 위에 든 쓴물을 다 쏟아내자 거짓말처럼 속이 가벼워졌다. 통증이 다시 올 수도 있었다. 나는 여전히 겁에 질린 채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기도하였다. 그 어떤 진통제나 진정제로도 고통을 줄일 수 없는 사람들, 더위 속에 일하다 숨을 빼앗긴 사람들, 물난리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 난민이 되어 정처 없이 국경을 넘는 사람들, 전쟁의 포화에 갇혀 생이 정지된 사람들을 위해. 그들에 감히 비할 바 없는 내 잠깐의 고통이었으나 어쨌든 느끼게 되는 동병상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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