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부부상담사>

내 휴대폰은 옆으로 펼치면 화면이 두 배로 커진다. 아침에 보니 두 개의 몸체가 접히는 하단 약 2센티미터쯤이 까맣게 변해 있었다. 보호 필름 탓인가 했으나 접히는 선을 따라 매끈하게 변색 된 것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조금 시간이 흐르자 화면 전체가 까맣게 지워졌다. 비가 오고 있었기에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금방이라도 휴대폰이 멎을까 두려웠던 나는 집을 나섰다.
AS 센터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 널찍하고도 쾌적한 공간이라니. 아무렇게나 꽂힌 우산, 바닥의 물기, 그 물기를 닦으려는 걸레질로 생기는 눅눅한 냄새, 이런 비 오는 날의 부산함 따위를 하나도 볼 수 없었다. 열 명도 넘어 보이는 기사가 한쪽 벽면을 따라 배치된 부스에서 고객을 맞았다. 내심 겁을 먹고 있었는데 휴대폰은 수리가 된다고 했다. 나는 뛸 듯이 기뻐 대략 사십 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도 함박웃음을 지었다. 창가에 있는 조그만 탁자를 골라 앉았다. 아직 읽지 못한 조간신문을 가방에서 꺼내 읽기 시작했다.
-왜 이제야 연락했냐고?
갑자기 한 여자의 앙칼진 소리가 평온한 공기를 마구 휘저었다. 주문이 잘못되는 바람에 난처한 지경이 되었나 보았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다가 문득 그게 무용지물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 휴대폰은 수리실 어딘가에서 낱낱이 분해되고 있었다. 그 여자를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AS 센터에 책임이 있는 자나 대기실의 그 많은 고객 가운데 어느 하나쯤은 나설 만도 한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이렇게 큰 수모 앞에서 왜 항의조차 하지 않는지 궁금해졌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일 터였다. 나와 달리 사람들은 그 소란이 하나도 거슬리지 않거나 아니면 저 정도로 무례한 사람이라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본능으로 알아 가만히 있거나. 첫 번째 이유를 알 도리는 없고 두 번째는 어쩌면 확인 가능할 수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기사가 예상보다 빨리 수리를 마치고 이름을 불렀다. 그곳을 나오며 그때까지도 큰 소리로 통화 중인 여자를 찾았다. 여자는 한쪽 기둥 뒤에 숨어 쪼그려 앉아 있었다.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있는 자가 취할 자세였다. 여자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저, 잘 모르시는 것 같아 말씀드리는데요,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있어요.
-아, 다 끝났어요. 끝났어
여자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이왕 실험하는 거, 한마디는 더 해야 데이터가 쌓이지 않겠나.
-사람들이 모두 힘들어해요. 나가서 통화할 순 없나요?
여자가 우뚝 일어섰다. 머리카락이라도 휘어잡을 듯 위협적이었다.
-거 누구신데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녀를 등지는 내게서 아마 바람 소리가 났을 것이다. 그래도 가오가 있지, 한마디는 더 해야 했다.
-그러실 줄 알았어요.
( 이십여 분이나 소란이 지속되었는데 AS 센터 관계자 누구도 그녀를 제지하지 않은 건 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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