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희<소설가> |
제주도는 사람이 죽으면 공동묘지나 산보다는 밭 가운데 묻고 돌담을 쌓는다. 그 무덤의 형태를 산담이라고 한다. 무덤 옆에서는 밭을 일구고 농사를 지어 생명을 연장해 나가는 일을 한다. 하늘에서 제주도의 산이나 밭을 내려다보면 곳곳에 산담이 있다. 그 모습은 사계절 내내 그림 같은 풍경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바로 곁에 있고 치열한 삶의 현장은 아름다움이다. 바람은 산담 주변에 희고, 노란 들꽃을 피워 낸다. 화려한 생명의 잔치는 희망의 폭죽처럼 기쁨을 용솟음치게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선산에 산소를 만들었다. 외삼촌은 산소 주변에 있는 아까시나무와 찔레나무의 씨를 말려야 한다고 했다. 산소 아래까지 뿌리가 뻗치면 안 된다며 무엇무엇을 하라고 하셨다. 우리 남매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 산소 주변에는 봄이면 하얀 찔레꽃과 아카시아꽃이 만발하였고 진달래도 아름지어 피었다. 산소를 관리하던 친척이 주변의 풀을 뽑고 가지를 쳐서 멀리서도 산속에 있는 산소가 보였다. 어머니도 아버지 옆에 나란히 묻혔다. 산소에 가는 길은 이승과 저승의 연결고리였다. 어머니가 자주 부르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를 흥얼거리며, 아버지를 만나고 어머니를 만나 세상살이 어려움을 투정 부리듯 말하고, 좋은 일도 자랑하고 왔었다.
『제주의 무덤』(김종범 사진)의 사진을 보면 하늘에서 드론으로 찍은 사진이 참으로 독특하다. 무덤이지만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또한 파묘한 사진도 많은데 무덤이 사라진 그 모습도 한 폭의 그림이다. 죽은 영혼마저 사라진 파묘의 장소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은 영혼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닐까? 제주도의 무덤은 왕릉처럼 대형무덤은 거의 없고 낮고 자그마하다. 바람 많은 제주 지형을 생각해서 만들었을 것이다.
드론 촬영은 지상에서는 확보할 수 없는 넓은 시야, 즉 조감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독보적인 강점이다. 널리 알려진 페루 나스카 평원의 수수께끼 같은 거대한 그림도 지상에서는 도저히 그 규모나 윤곽을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장면을 잡아낸다. 『제주의 무덤』을 낸 김종범 사진가도 수년간 제주도의 매력에 빠져서 수십 번 제주도를 오가며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목디스크가 오고 또 값비싼 드론을 바다에 빠트리길 여러 번 하면서 무덤과의 사랑에 빠졌다. 죽음과 삶은 별개가 아닌 하나의 생명으로 보였던 것일까. 그의 사진에는 제주의 사계와 함께 산담이 있다.
2년 전 우리 부모님의 산소도 파묘하고 화장하여 봉안당으로 모셨다. 엄마 아버지의 파묘한 산에는 가본 적이 없다. 벌써 아카시아와 찔레는 온 산을 뒤덮어서 형태를 알 수 없을지 모른다. 제주도처럼 밭 한가운데에 돌담을 쌓아두지 않았으니 자연으로 빨리 돌아갔을까?
시어머니의 산소는 산꼭대기에 있어 저 멀리 속리산이 보이는 곳에 자리 잡았다. 시댁 형제들은 시아버지를 뵈러 갈 때마다 어머니의 산소에 들러 음식을 올리고 절을 하고 온다. 꼭 살아 계시는 것처럼 찾아뵙는다. 살아 계실 때보다 훨씬 자주 간다.
나는 어디로 가서 묻혀야 하나? 엄마 아버지가 계시는 봉안당일까. 시어머님이 계시는 시댁 선산일까? 내 사후의 일은 나의 영역은 아니다. 수목장을 해달라고 했으나 남은 자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둘이 아니라 하나의 연결이라고 믿고 싶다. 시신이 어디에 있던 생명의 영혼은 우주에 존재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하여 이 봄 활짝 핀 봄꽃에 새 생명의 축복이 가득하길.
안산신문 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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