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부부상담사>

사진을 찍으려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을 보는 건 언제 봐도 흥미롭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피사체가 되어 사진 찍히는 걸 놀이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의 포즈는 장난스러우며 자유분방하다.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는 한편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어떻게 저런 포즈를 생각해 냈을까, 그 기발함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한다.
내 나이 또래는 사진 찍는 일을 놀이로 생각하기보다 기록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태어날 때부터 사진과 친숙한 젊은이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살펴본 바에 의하면 피사체가 되어 사진 찍힐 때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사진 찍히기를 극구 거부한다. 나도 어쩌면 이런 유형에 속할지 모른다. 이들이 사진 찍히기를 싫어하는 이유는 무얼까? 우선 사진의 분량에 염증을 느낀다. 너무 많이 찍어대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사진이 너무 솔직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줄어든 머리숱, 자글자글한 얼굴의 주름, 불룩 튀어나온 배 가리지 않고 숨김없이 다 드러낸다. 사진 한 장에서 흘러간 세월을 읽지 않을 도리가 없다. 사진을 진실을 찍었을 뿐인데 그걸 보고 새삼 충격을 받는다. 얼핏 멋지게 찍힌 것 같은 사진도 손가락으로 확대해서 보면 실망스러울 때가 대부분이다. 내 친구는 이런 걸 일컬어 ‘확대하면 다 나와’ 현상이라고 명명했다. 이런 유형은 구석에 서거나 키 큰 사람의 뒤에 조용히 자신을 은닉한다.
두 번째는 기계적인 포즈를 취하는 유형이다. 좀 웃어봐요.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려 보세요. 이런저런 주문에도 좀체 경직된 자세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찍는 사람이 지쳐 먼저 포기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런 증상은 무언가 정신적인 이유와 맞닿아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들은 말하자면 한 번도 ‘망가져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일 수 있다. 적어도 타인의 시선 앞에서는 자기가 기준으로 세운 어떤 엄격한 가면을 절대 벗으려 하지 않는다. 혹은 벗고 싶지만 벗을 수 없다. 그런 경험이 없어 어떻게 벗어야 할지 언제 벗어야 할지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 자신감이 부족해서인 것 같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이들은 남들보다 더 자신을 깎아내려서 본다. 외모에 관한 한 근거 없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그 자신감이 외모의 주요한 한 요소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세 번째는 자유분방한 유형이다. 물론 젊은이들의 재기발랄함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래도 충분히 칭찬할만한 포즈를 곧잘 취한다. 여러 명이 사진을 찍을 때는 이들이 나서서 구도를 디자인하기도 한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이 유형에 많다.
오래전 여행할 때 만났던 여자가 있다. 그녀는 말수도 적었고 행동도 조신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탁 트인 벌판이 나타나고 그 위로 열기구가 떠다니는 곳이었다. 너럭바위 위에 한 사람씩 혹은 두 사람씩 앉아 사진을 찍었다. 그 여자는 혼자 자리에 앉았다. 그녀보다 한참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편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긴 머리를 휘익 등 너머로 넘기며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혔다. 다리 하나를 세운 채였다. 독보적인 포즈였다. 수많은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 극적인 포즈를 취할 수 있는 그녀가 부러웠다. 수수한 여자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영화 배우처럼 보였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그 여자를 생각했다. 키 큰 사람의 뒤에 서고 싶거나 아무리 용을 써도 마음에 들지 않는 포즈가 나올 때 그녀를 생각했다. 하다 보면 멋진 포즈가 나오겠지. 그 꿈을 이루고 싶다. 언제 어디서든 유연한 포즈로 사진을 찍는 멋진 할머니가 되는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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