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부부상담사>

식당에서 육개장을 먹고 나오니 작은 뜰에 사슴 조각상이 있었다. 엄마 사슴은 말끔하게 다듬어진 잔디를 딛고 고개를 돌려 서너 걸음 뒤의 새끼 두 마리를 보았다. 네 살쯤 되어 보이는 아기가 제 키만 한 엄마 사슴을 주물렀다. 아기는 아주 날쌨다. 엄마 사슴을 만지는가 싶으면 어느새 새끼 사슴을 만지고 있었다. 대리석 조각상이나 사슴의 가느다란 뿔은 부러지기 쉬워 보였다. 아이와 동행한 어른들 그 누구도 아이를 만류하지 않았다.
이 년 전이던가. 경주 솔거 미술관에 전시된 박대성 작가의 서화 작품이 수난을 당했다. 보험평가액이 일억원이 넘는 작품은 너무 길어서 바닥에 전시대를 놓고 늘어뜨린 상태였다. 초등학생 아이가 작품 위로 올라가 기어다녔다. 먹으로 쓴 글자는 긁히고 옆으로 번졌다. 아이 아빠가 달려와 말렸을까? 아니다. 아이 아빠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태평하게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행동하는 건 아이들만이 아니다. 어른들은 더 많다. 어제 인문학 여행으로 동학농민혁명 기념 공원을 다녀왔다. 참가자 모두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사회를 보는 날카로운 안목을 지닌 교양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해설사와 함께 전봉준 장군과 농민군이 출정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 ‘불멸, 바람길’에 다가가고 있었다. 계단 위의 조각상에는 중년 남자 대여섯이 조각상을 쓰다듬고 있었다. 만지지 마세요. 마이크를 쥔 해설사가 제지했다. 그들은 흠칫 놀라며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슬쩍 해설사의 등 뒤로 가 속삭였다. ‘우리 일행에게도 말해주세요. 틀림없이 조각상을 만질 겁니다.’ 어디까지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나는 이 그룹의 인문학 여행에 모두 세 번 함께했다. 꼭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국악 박물관에서는 세계에서 제일 큰 북이라는 ‘천고’를, 줄다리기 박물관에서는 전시된 모형 곡식을, 중국 단둥의 어느 호텔 로비에서는 전시된 조각상을 쓰다듬었다. 매번 여행을 기획하고 이끄는 인솔자에게 불평을 말한 적이 있다. 전시 예절에 대해 주의라도 좀 주라고 부탁도 했다. 웬일인지 내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불멸, 바람길’ 앞에서 내 귓속말을 들은 해설사는 ‘조각상 만지시면 안 됩니다.’ 우리 일행에게 한 번 더 단속해 줬다. 그러나 별 소용은 없었다. 나는 사진을 찍으며 애써 주위를 보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가 누군가에게 벌컥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만지지 좀 마세요’ 제지당해 본 경험이 없는 아이와 어른은 어딘가에서 사고를 치게 되어있다. 몇 년 전 롯데몰에서는 한 여성이 바닥에 소품으로 늘어놓은 붓과 물감으로 전시 작품에 덧칠한 일이 있었다.
얼마 전에는 서울 지도를 그려놓고 각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공들여 색칠 작업을 하던 외국인의 작품에 펜으로 낙서한 남녀가 있었다. 앞의 여성은 작품에 덧칠하는 자기 모습이 찍힌 영상을 써도 좋다는 조건으로 합의하였고 뒤의 남녀는 합당한 돈으로 보상해야 했다. 가장 최근에는 호암 미술관에서 핸드폰을 보며 걷던 아이가 수 억대 설치 작품을 떨어뜨린 일도 있었다. 다행히 크게 훼손되지 않아 지나갔지만 약 오억 원을 보상해야 했을지 모른다.
이 모든 일은 다 전시물을 너무 가볍게 보는 데서 온다. 나는 라오스에서 왕이 타던 수레를 아무렇지 않게 손으로 문지르던 사람도 본 적이 있다. 대담함이라고 해야 하나? 무감각이라고 해야 하나? 문화재나 예술 작품, 전시물을 바라보는 우리 태도를 한 번쯤 심각하게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모든 전시품이나 문화재는 눈으로만 만져야 한다. 우리가 한 번 만질 때마다 그것들은 꼭 그만큼 훼손되어 간다. 그 모든 전시물에 예의를 갖췄으면 좋겠다.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육계장을 파는 식당의, 그 생뚱맞은 사슴 조각상에게도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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