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꽃이 피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아마도 단풍놀이보다 즐거운 것이 꽃놀이일 것이다. 모든 꽃은 의미를 가지고 핀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눈에 보이는 꽃만 보러 다니는 여행을 하고 있다. 설사 그것이 꽃이 아닌 돌멩이라도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의미에 주목하는 여행이 관광상품으로 보편화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이런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 문학기행(文學紀行)이다. 문학의 현장에서 만나보는 나무나 돌도 특별할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특별한 의미 때문에 바라보는 사물과 자연은 얼마나 감동적인가. 그 감동을 느끼러 북해도를 가보기로 했다.
북해도에 가면 아사히가와가 있고 아사히가와에는 솟구치는 듯이 시내 남쪽을 굽이쳐 흐르는 비에이(美瑛)강이 있다. 이 강의 강물은 겨울이 긴 북해도 처럼 눈과 얼음 속에서 숱한 세월을 치열하게 흘러 왔을 것이다. 바로 이 강의 한 쪽에서 미우라 아야꼬의 소설 ‘빙점’의 주인공 게이조의 어린 딸이 시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그 딸 루리코를 대신하여 딸로 자란 요코가 기막힌 사연의 유서를 남겨놓고 바로 이 강변의 눈 속에서 자살을 시도한다. 용서해야 한다고, 화해해야 한다고 둥근 조약돌은 그곳을 떠나지 않고 쌓여 있었던 것일까. 루리코 살해범의 친딸로 밝혀진 준코가 울음을 터뜨리며 용서를 빌었던 곳도 그곳이다.
그곳에서 노란색의 큼직한 감자 꽃이 핀 제방을 따라 똑바로 7,8백미터쯤 가면 한낮의 햇빛도 뚫지 못할 정도라는 큰 숲이 있다. 요오코가 그루터기에 앉아 ‘폭풍의 언덕’을 읽었다는 시범림이다. 이 시범림 입구 어디쯤이 소설의 주인공 쓰지구치 게이조의 집 뜰이었을 것이다. 미우라 아야코를 사랑하는 독자 1만5천명은 2억 엔이라는 기금을 모아 1998년그 곳에 기념 문학관을 세웠다.
문학관 건립 다음해 그녀는 세상을 떠날때까지 1년동안 그곳을 다녀간 사람이 10만을 넘었다고 하니 가히 폭발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250 여 점의 작품들은 오늘도 남아서 우리에게 “ 빛과 사랑과 생명”의 메시지를 들려주고 있다. 그녀의 ‘빙점’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숲처럼 고요하게 서 있다는 그 문학관에 가서 ‘빙점’의 오리지널 작품과 그녀가 남기고 간 유품들을 보았으면 할 것이다.
상록수문학회에서는 오는 4월26일 이십 명 정도의 문학 기행단이 북해도를 다녀 올 예정이다. 이번 여행 코스에는 영화 ‘철도원’의 아쿠도라와 ‘러브레터’의 오타루도 들어 있다. ‘철도원’은 일본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나오키상을 수상한 아시다 지로의 단편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서 영화 속의 호로마이 역의 모델이 된 곳은 아쿠도라 역이다. 그곳 마을에는 영화 ‘철도원자료실’이 있어 찾는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한다. .
‘러브레터’에 나오는 자작나무주택과 글라스공방이 영화촬영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오타루는 낭만적인 항구도시로서 이곳을 다녀온 어느 여행객은 오타루 전체가 ‘러브레터’를 위해 만들어진 도시 같다고 했다.
영상작가 이와이 슈운지 (岩井俊二)는 ‘러브레터’의 영상미로 이 도시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고 이 도시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아끼고 사랑하였을 것이다. 10월이면 첫눈이 오고 5월이나 돼야 봄이 온다는 북해도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봄이오면 과연 그 곳의 강으로 유빙(遊氷)이 그렇게 무섭게 흘러갈까. 사람 사는 이치가 다 같은 것이지만 웬지 다른 무엇이 있을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여행은 언제나 사람을 설레게 하나보다.
벚꽃이 만개하고 바야흐로 관광시즌이다. 사람들이 여행에 관심을 가지면서 관광상품도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거의가 패키지상품 일색이다. 이런 시장에서 테마여행을 그것도 문학을 테마로 하여 외국까지 돌아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둘러 볼 ‘빙점’의 강과 숲, ‘철도원’의 간이역, ‘러브레터’의 공방들은 눈에 보이는 존재 이상의 의미를 우리에게 줄 것이다. 아내와 아이마저 기적소리너머로 묻어 버린 채 묵묵히 철도원으로 살아가는 한 남자가 서있던 역에서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여행, 여행은 이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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