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책으로 빼곡한 집무실에서 만난 안산제일교회 고훈목사(56)는 얼핏봐도 수척한 모습이었다. 8개월에 걸친 투병생활로 평소 65kg이던 몸무게는 48kg까지 줄었다. 듬성듬성 머리카락도 빠지고 이마엔 짙은 주름살이 폈다.



하지만 육체적 변화는 그에게 더 깊은 신앙심과 깨달음을 주었다. 『삶과 죽음은 별반 다를게 없다』고 말하는 고훈 목사의 말속엔 되레 강한 힘이 묻어있다.



지난해 여름이 시작되던 6월의 끝자락에서 그는 위암말기 판정을 받았다. 사람으로 치면 의학적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다. 7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리한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였다. 올 3월까지 여섯 번에 걸친 항암치료와 스물다섯번의 방사선치료는 『부작용과 고통으로 살아있음이 더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다.



『죽는다는 것이 그다지 두렵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똑바로 사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는걸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다들던 그때 깨달았죠』고통스런 투병생활로 지쳐가던 그를 일으켜 세운건 시(詩)였다. 병상에 누워 하루 평균 한편씩의 시를 짓기 시작했다. 살아온 인생을 회고하듯 삶의 지렛대가 되어준 신앙을 새기듯 수채화같은 감성들이 그의 글속에서 피어났다. 『누워지내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글쓰기 밖에 없더라구요. 투병생활 과정이 내 인생에서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 시기가 된 셈이죠』



신앙인으로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는 고훈목사는 「글쟁이』로도 유명세가 오르내린다. 「목회일기 사모일기」 「나의 자랑 십자가」 등 신앙심이 묻은 저서도 많지만 「소중한 외출」 「도시의 아침」 「흔들리는 것은 네가 아니라 바람이었다」 「비탈에 선 나무」 등 수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병상을 털고 일어선 그가 두권의 시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위암판정을 받을 당시부터 힘든 투병생활속 감성들을 300여편의 시로 묶어낸 것이다. 『사랑하는 이여/ 그분이 나를 이렇게 사랑했듯이/ 나도 이 사랑으로/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시집 겨울목련 부활 꽃 피울 때 中 「사랑」)는 그는 「그분」의 사랑만큼이나 세상 모든이를 사랑하고 싶다는 간절한 믿음을 스스로에 새겼다.



그리고 8개월 간의 인생의 광야였던 암병원에서 퇴원하던 날 그는 『다시는 찾을 수 없는/ 내 생명의 일부를 묻고 가지만/ 나는 이곳에서 아니면 평생 찾을 수 없는/ 소중한 영감과 깨달음과 새 생명을 얻어갖고 간다』(시집 그날 같은 하루를 날마다 살고 싶다 中 퇴원을 하면서(2))는데 감사했다.



『의사가 나의 병을 치료하고 있을 때 병은 나의 영혼을 치료하고 있었습니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고 기쁨을 나누고 주님께 이 영광을 드립니다』 그는 두 권의 병상시집을 『이 땅에서 투병하는 모든 환자들과 그 가족 그들을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들과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바친다』고 말했다.

<강형민 기자 khm@ansanilbo.com>

최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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