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부부상담사>

12월 7일 여의도 탄핵 집회. 친구 뒤에 앉은 대여섯 살 정도의 아이가 이렇게 물었다고 했다.
“엄마, 괴물은 왜 안 보여? 어디 갔어?” 아이의 엄마가 즉시 대답했다. “어디에 숨었나 봐.”
12월 8일 저녁, 조문을 갔다가 이 얘기를 들었다. 전날 집회에 다녀온 친구는 그 엄마가 아이에게 ‘괴물 잡으러 가자’고 했던 것 같다며 웃었다. 그 무렵의 대통령은 아이 엄마의 말처럼 분명 숨을 죽이고 있었다. 우리 테이블에는 여섯 명이 앉아 있었다. 모두가 대통령을 욕했다.
그 가운데에는 대선에서 윤석열에게 투표했던 사람도 있었다. 그이는 열렬한 윤석열 신봉자였다. 그러나 자기가 하는 사업에 투입되던 정부 예산이 대거 삭감되자 조금씩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신발을 꿰는데 누군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 “계엄을 하려면 봄이나 가을에 하던가. 이 추위에 뭔 지랄이냐고.” “그러니까.” 여기저기서 격한 공감이 터져 나왔다.
12월14일에는 나도 여의도에 가고 싶었다. 준비가 좀 필요했다. 인터넷으로 응원 봉을 검색했다. 생각보다 비쌌다. 때마침 응원 봉을 들고 함박웃음을 짓는 사진을 떡하니 SNS에 올린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서 응원 봉을 빌리기로 했다. 그다음 준비로 ‘다시 만난 세계’를 유튜브로 들었다. 박자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대목에서 들어가야 하는지 좀처럼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노래가 어렵다고 투덜대는 사이 대통령이 12.12 담화를 내놨다. 어쩌자고 그는 매번 자기를 망치는 결정을 내리는 걸까. 자기 잘못일 수 있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이 돌덩이처럼 굳은 신념에 차 있었다. 나는 그의 담화를 듣고 여의도에 가지 않아도 되겠구나, 확신했다. 그가 불쏘시개를 지고 화염 속으로 뛰어든 꼴이었으니 결과는 뻔했다. 내가 굳이 힘을 보태지 않아도 모두가 원하는 결과가 나올 거였다. 아버지 병상을 지키고 있어서 여의도에 갈지 말지 계속되던 고민이 일거에 해소되었다.
12월 14일 다섯 시.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는 걸 티브이로 지켜보았다. 티브이 카메라가 비추는 얼굴은 거의 젊은이들이었다. 카메라가 사람을 고르지는 않을 텐데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다 젊은이들이었다. 감회에 젖은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젊은이들을 떠올렸다. 군인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상관이 불법적인 일을 벌이고 있다는 걸 알고 몇 달 전부터 여기저기로 위험 신호를 쏘아 올렸다고 했다. 이런 용기를 내기에 군대란 얼마나 위험한 곳인가. 계엄 포고령이 떨어지고 곳곳에 동원된 군인들도 알게 모르게 태업으로 내란에 맞섰다. 이렇듯 광장의 안팎에서 싸운 젊은이들 덕분에 치욕의 쿠데타를 막을 수 있었다.
오늘 나는 딸과 점심을 먹었다. “딸아. 이제 엄마는 은퇴해도 되겠어. 어제 여의도 풍경을 보니까 젊은이들이 너무 잘하더라. 이제 늙은 엄마, 아빠들은 물러나고 젊은이들이 알아서 나라를 이끌어도 되겠어. 젊은이들이 너무 자랑스러워.”
딸은 묵묵히 밥을 먹었다. 딸이 식사를 준비했으니 양심상 설거지는 내 차지였다. 우리 사이의 불문율이었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딸은 식탁에서 그릇을 거둬 조용히 그것들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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